▲직접 종이에 구멍을 뚫어 제본실로 꿰매는 바인딩 작업
안은성
당시 나는 한 아파트 관리동 3층에 위치한 마을 도서관에서 '책 만드는 엄마'라는 소모임을 4년째 운영하는 중이었다. 대개 10명 이내의 동네 엄마들과 매주 모여 다양한 형태의 책을 손으로 직접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는데, 도서관에서 진행한 여러 개의 소모임 중 가장 장수한 모임이었다.
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북아트 작업을 하려면 가끔은 실을 꿰어 묶기 위해 구멍을 뚫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뜨거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무조건 망치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가 밖에서 망치질을 해야만 했다.
도서관이다 보니 조용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도 했고, 바로 아래층에 관리소 직원들이 근무했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는 작업은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책을 만들다가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 먹기도 했지만 냄새가 풍길까 봐 그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럴 때 농담처럼 하던 말이 "우리도 작업실 있으면 좋겠다"였다.
그렇게 농담 삼아 작업실 이야기를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마을 도서관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시에서 운영비 지원이 끊겼고, 임대료와 인터넷 요금이 연체됐다. 그동안 무임금으로 도서관을 지켜오던 관장님마저 생계 문제로 도서관을 떠났다. 인력도 재정도 모두 힘든 시기였고,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대로 도서관 문을 닫기엔 마을에서 맺어온 인연과 도서관 한가득 꽂힌 책들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소모임 초기부터 몇 년간 함께 해온 두 명의 회원과 함께 작업실 겸 마을 북카페를 새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서울시 사례에서처럼 나를 포함해 3명이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인근 지역 상가에 북카페를 연다면 커피라도 팔아서 운영비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이게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도 아니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산포자(산수 포기자)였던 내가 대충 한 계산이니 오죽했을까마는, 당시엔 어떻게든 될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 어설픈 계획에 두 명의 동네 언니가 맞장구를 치면서 2013년 봄, 마을 북카페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 시작됐다.
마을 대표 33인이 모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존 도서관을 이용해온 회원들과 지역 사회에 마을 북카페 설립을 알리고 응원을 구하는 일이었다. 온라인 카페에 우리의 계획을 알리고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성미산 마을카페 탐방도 가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출자자 모집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