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앞둔 12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0'이라는 숫자 탓일까. 올해 5월 23일은 예년처럼 보내선 안 될 것만 같았다. 지난 몇 해처럼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광주에는 '새로운 노무현'이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일찌감치 내걸렸다.
10주기에 맞춰 교정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에서는 '5.18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다. 5.18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의 모교로서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인데, 올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5.18, 노무현에게 말을 걸다.' 올해 7회째를 맞는 '5.18 작은 음악회'의 슬로건이다. 5.18 정신을 구현하는 것과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아이들과 공감하자는 취지다. 제16대 대선 당시 '노풍'의 진원지가 바로 이곳 광주라는 걸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행사를 꾸리는 데 있어서 아이들의 참여는 '밑절미'(밑바탕)다.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면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 수 없고 '동원된' 행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건 5.18과 노무현을 욕보이는 짓이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아이들의 진솔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자칫 행사를 교사가 주관하게 되면 기성세대의 인식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노무현에 대한 기억은 세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수업 시간 짬을 내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어 돌렸다. 짤막하게 자신의 생각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설문 시작 전 퀴즈 삼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이들의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다.
예상대로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의 이름은 대부분 누락했고, 재임 순서를 바꿔 쓴 경우도 태반이었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4명의 이름은 외려 틀린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 만난 대통령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2001년 이후에 태어난 그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교과서에서나 보는 역사 속 인물일 뿐이다. 그나마 광주에서 나고 자란 까닭인지 김대중과 전두환은 앙숙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은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였다. 한 단어로 답하라는 주문에, 놀랍게도 60여 명이 서로 보고 베끼기라도 한 듯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명사로는 '변호인' '바보' '정의' '서민'이 다였고, 형용사로는 '불쌍함' '미안함' '안타까움'이 전부였다.
10년 전이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인데도 노무현에 대한 이미지는 기성세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문지를 수합한 뒤 그 이유를 아이들 각자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영화 <변호인>을 보고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영화 <변호인>을 안 봤다는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아이들이 입버릇처럼 외고 있는 것도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의 힘이었다. 영화를 본 뒤 변호사로 진로를 바꿨다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일베'라는 답변도 적잖이 나올 거라 짐작했는데 고작 몇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앞뒤가 뒤바뀌었지만, 그를 두고 '일베'의 패륜적 행태에 맞선 투사라고 적고 있었다. 한 아이는 노무현의 삶을 알고 난 뒤 '일베충'들과 결연히 맞서 싸웠다고 보란 듯 설문지에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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