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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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등학교 '납부금'이 사라질 모양이다. 지난 9일 정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고등학교 진학률이 사실상 100%에 달하는 상황에서 고등학교 교육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니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더욱이 지역별, 학교별로 액수의 차이가 커서 형평성에 어긋나고 교육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받아온 터다. 참고로,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 등을 포함해 일반 인문계고의 경우 1년으로 환산하면 50만 원 넘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는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수업료 책정 권한이 시도교육청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입장에선 까다로운 업무 하나를 덜게 된 측면도 있다. 당장 학부모에게 납부금 독촉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행정실의 업무이긴 하나, 대개 납부금 장기 미납 학생이 있으면 해당 담임교사에게 명단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로서 아이를 불러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가정통신문이나 SNS 문자 등을 통해 납부를 독려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유든 의도적으로 버티는 경우든 더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오죽하면 학교마다 납부금 미납자에겐 졸업장을 수여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할까. 물론, 어디까지나 엄포일 뿐 실제 졸업을 시키지 않은 경우는 없다.
실제로 납부금을 지원받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태 전 어느 교육연구소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국 고등학생의 절반가량이 장학금이나 학비 지원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납부금을 면제받고 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의 감면 혜택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60%를 상회할 것으로 여겨진다.
가난을 증명하는 일, 이젠 끝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정작 학비 지원이 절실하고 시급하지만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도 적지 않다. 대개는 갑작스레 맞닥뜨린 현실을 서류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경우다. 나 몰라라 할 게 아니라면, 이는 여전히 교사가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그러한 경우 학교장 추천을 통해 감면을 받도록 하거나, 외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십분 활용해 부담을 덜어주려 하지만 이 또한 결코 녹록지 않다. 학교장 추천의 경우엔 감면 대상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외부 장학금은 조건이 까다로워 신청 자체가 쉽지 않다. 신청한다고 해도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헛물만 켜다 끝나는 일도 부지기수다.
특히 올해 장학금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유독 많다. 장기 불황의 여파에다 부모의 갑작스런 별거나 이혼 등으로 고스란히 아이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경우다. 많은 담임교사들이 학년 초 상담의 목적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발굴'해내는 일이라고 이구동성 말할 정도다.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든, 교사든 한 푼이 아쉬운 '을'의 처지라 장학금을 주겠다는 기업이나 단체가 한없이 고맙다가도,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하나둘 따져보노라면 '갑질'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받는 입장에선 장학금이 '가진 자의 시혜'로 비치기 일쑤다. 교육의 본령에 가까워야 할 장학금 업무가 외려 힘들고 번거롭고 짜증 나는 잡무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흔히 장학금이라고 하면 대상자를 선정해 학비를 지원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지만, 한자 말 번역에 충실하자면 아이들의 배움을 장려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배움을 북돋우기 위한 전제 조건이 돈만은 아닐 텐데, 장학금을 지원해주겠다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종일 액수와 기한, 서류 등의 문제를 문의하다 보면 본질적 의미가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물론, 지역 공헌 사업의 일환인 경우도 있고, 조세법상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한 의도도 읽힌다. 그래도 기업과 법인, 기관과 교회 등에서 그들이 거둔 수익의 일부를 미래세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는 것 자체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신청할 때 갖춰야 할 온갖 서류다.
많게는 열 가지도 넘는 서류를 챙기다 보면, 종종 일하다 말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학교생활기록부와 담임교사의 추천서야 그렇다 쳐도, 월별 의료보험 영수증과 가족관계증명서, 소득 합산과세 증명서, 기초수급자증명서 등을 모두 첨부하라는 건 지나치다 싶어서다. 한번은 겁도 없이 해당 기관에 부러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 적도 있다.
아무리 주위에서 모르게 조심한다 해도,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건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라는 생각에서다. 교육을 받기 위해 그들 앞에서 구걸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아이나 그들의 부모가 주민 센터나 금융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용처를 기입하고 관련 서류를 발급받을 때 느끼는 참담한 심정을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