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나와 두 노인(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610년경, 바이센슈타인 성, 포머스펠덴)
쇤베른 콜렉션
벌거벗은 한 여인이 고개를 돌리고 남자들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검은 머리 남자는 빨간 망토의 남자에게 귓속말을 속삭이고, 빨간 망토의 남자는 여인에게 뭔가 말을 전하고 있다. 여인은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그린 '수산나와 두 노인들'이다. '수산나와 두 노인들'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수산나와 요아킴은 유대인 부부다. 남편 요아킴이 유명인사라 집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는데, 그중에는 유대인 재판관 두 명도 있었다. 이 두 재판관은 아름다운 수산나를 탐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들 모두가 돌아가고 수산나가 정원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두 노인은 수산나에게 다가가 성관계를 요구했고, 만일 거절할 경우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고 고발하겠다며 협박했다.
수산나는 거짓이 두려워 겁탈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거절했고, 결국 이들의 모략에 당해 간통죄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중 수산나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성령이 어린 다니엘의 몸에 내려왔고, 다니엘이 진실을 밝혀 수산나의 누명이 벗겨진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복제됐다. 여자의 누드가 금지되던 당시, 성경의 이야기를 매개로 여자의 누드를 그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정원 풍경 속 여자의 누드는, 그림을 매입하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모두 남자였던 사회에서 흥미와 가치가 있었다. 희생자인 수산나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은 채 남자 화가들에 의해 두 노인을 유혹하는 여자로, 때로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연약한 모습으로 재현됐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수산나는 이 상황이 몹시 불쾌하다. 여자의 누드에만 초점이 맞춰진 여타의 그림들과는 달리 이 그림은 수산나가 느끼는 수치심과 저항감이 온몸으로 드러나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당대 거장인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유명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다. 아르테미시아의 어머니는 그가 7살 때 남동생 셋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이후 아버지가 혼자서 네 남매를 키웠다. 미술학교 입학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시절, 그는 아버지 밑에서 물감을 섞고 안료를 빻으며 자연스레 미술을 배웠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가 17세에 그린 그림이 '수산나와 두 노인들'이다. 물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 추정된다.
아르테미시아는 다른 화실의 견습생인 기로라모 모데네제와 서로 연정을 품고 있었다. 남몰래 아르테미시아를 탐하던 아버지의 친구이자 화가인 아고스티노 타시가 사사건건 이들을 방해했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수산나와 두 노인들'에서 검은 곱슬머리의 남자가 제목과 다르게 노인이 아닌 이유다. 아르테미시아는 수산나의 모습에 자신이 느끼는 불쾌감을, 두 노인 중 한 명의 모습에 자신을 탐하는 타시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강간했느냐'가 아닌 '순결했느냐'
악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타시는 오라치오와 퀴리날레 궁 추기경회실에 들어갈 프레스코화를 공동 제작 중이었다. 타시는 오라치오에게 딸의 그림 선생이 돼주겠다고 제안한다. 원근법에 능했던 타시가 그를 지도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한 오라치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업을 핑계로 아르테미시아와 자연스레 만날 일이 많아진 타시는 마침내 그를 겁탈한다. 타시는 이미 유부남이었지만 결혼을 약속하며 그를 다독였다. '순결'을 잃은 여자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몇 달을 더 그를 농락한 후에야 타시는 결혼 의사를 철회했다. 이 사실을 알고도 참아왔던 오라치오는 그를 강간죄로 고소한다.
알고 보니 타시는 상습범이었다. 그의 아내도 강간해서 그 죄를 모면하기 위해 결혼했고, 아내의 어린 여동생(13세)도 강간해 임신까지 시켰다. 아내의 여동생과의 성관계도 근친에 해당돼 벌을 받던 시대다.
이를 피하기 위해 타시는 아내를 청부 살해해달라고 의뢰한다. 아내를 죽이고 처제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오라치오의 그림을 훔치려던 계획이 탄로 났다. 놀랍게도 이게 실화냐 싶지만 때때로 현실은 드라마를 앞선다.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의 쟁점은 타시가 '그를 강간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순결했느냐'였다. 여성의 순결만이 재산으로 간주되던 때였다. 그는 자신의 순결을 입증하기 위해 산파들 앞에서 부인과 검사를 받아야 했고, 그의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타시와 대질 상태에서 '시빌레'라는 모진 고문을 견뎌야 했다.
시빌레는 손가락 마디가 으스러질 때까지 조이는 고문으로, 고문이 끝났을 때 그녀의 손은 시퍼렇게 부어올라 마비됐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도 증언을 번복하지 않으면, 그 말은 진실로 입증됐다. 그게 당시의 관례였다.
우여곡절 끝에 아르테미시아는 풀려났고 타시는 유죄가 확정됐다. 어이없게도 타시의 후원자들이 힘을 행사해 타시는 금세 풀려난다. 그림 좀 그리는 남자 화가들에게 세상은 한없이 너그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