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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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뒤 총리에 취임한 하토야마 유키오(1947년 생)는 미국이 볼 때 꽤 부담스런 인물이다. 대미 종속적인 일본 외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퇴임 후인 2015년 8월 12일에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 꿇고 절하면서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참회한 적도 있다.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감방에도 꽃을 바쳤다. 일본 우익과 미국이 볼 때 '좀 위험한 정치인'이다.
소에야 요시히데 게이오대학 교수는 한국 학술지에 기고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안보 정책: 하토야마 유키오와 간 나오토 정부를 중심으로'에서 하토야마의 외교적 주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에 집중 배치되어 있는 현실을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일본의 평화는 일본인들에 의해 건설되어야 한다. 대미 안보 의존은 향후 반세기 혹은 1세기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된다. 후텐마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시대가 금방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언젠가 다가올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 구현을 위해 한국 및 중국과 더불어 동아시아를 창조해야 한다."
- 한국전략문제연구소가 2010년 7월 발행한 <전략연구> 제17권 제2호.
후텐마 기지는 대미 의존을 상징하므로 재고해야 한다, 미국이 아닌 한국·중국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 등등이 하토야마의 신념이다. 안 그래도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약화를 고민하던 미국을 바짝 긴장케 할 만한 신념이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바뀐 오키나와의 운명
그런 하토야마가 정권을 잡으면서 후텐마 문제에도 변수가 생겼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 중 하나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외부 또는 일본 밖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위의 1995년 및 2006년 합의를 뒤집고, 사정변경을 이유로 미국의 양해를 촉구했다.
물론 오키나와 미군기지 전체를 옮기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45년 이래 64년간(2009년 기준) 오키나와를 근거로 중국과 동아시아를 견제해온 미국으로서는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밖으로 빼라'는 요구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진 게 바로 천안함 사건이다.
미국은 이 사건을 하토야마의 요구를 물리치는 명분으로 활용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북한 폭침설을 명분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위의 김하영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뒤 미국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줄곧 일본을 압박했다.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한국이 맞닥트린 위험은 일본에도 위협'이고 '일본 국민도 북한 공격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