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와 로스쿨을 모두 졸업한 인터뷰 주인공은, 로스쿨에서는 수의대에서와 달리 '고시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는 것이 당황스러웠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전문직양성기관과 전세계에서 일본 로스쿨을 제외한 모든 전문직양성기관은 전문자격의 취득을 '절대평가'로 한다고 말한다.
박은선
'의료계는 실습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이 맞지만 법은 본래 이처럼 고시공부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수의대에서는 본과 3학년 때 내과, 외과, 산과, 영상과 실습을, 4학년 때 병원실습을 한다. 그런데 갈수록 전문화된 진료의 니즈가 많아지자 현재 수의대에서는 의대 전문의 과정처럼 각 임상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진학해 수련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꼭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1,2년 정도는 자신이 생각하는 분야에서 수련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예비 의료인 교육은, 기본적인 이론과 리서치 능력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추고 그 다음부터는 좀 더 배워서 모자란 점을 채우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나는 이것이 기본적인 면허제도의 모습이고 취지라고 생각한다. 즉, 면허나 자격증은, 그 분야의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그 분야에서 한사람의 몫을 시작할 수 있음에 대한 증명인 거다. 또 기본적으로 의료계가 실습 위주로 교육하는 건 문제해결시 필요한 방법론에 요구되는 것이 실습이라 실습위주로 진행이 되는 것이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변호사의 경우도 같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저 방법론적으로 의료계에서와 다소 다른 형태의 실습이 요구될 뿐이다. 예컨대 수의대에서 진단을 위해 영상의학이나 임상병리학의 방법론을 취한다면 로스쿨에서는 판례를 검색하고 그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실습이 필요하다. 결국 양자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교육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점에서 로스쿨도 수의대 등 의료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왜 변시는 절대평가가 아닌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변시가 절대평가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로스쿨은 의학전문교육기관 같은 전문교육기관이 절대 아니다. 교육과정의 본질이 유사함에도 전문교육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질 않다. 그것이 나는 변시가 절대평가로, 자격시험으로 치러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수의대 국시준비는 본과 4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된다. 학교를 다니면서 배웠던 과목 중 총 20과목을 하루에 평가하는 시험이라 분량이 적은 시험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평가제 하에서 반드시 알아야 될 부분들 위주로 시험이 치러지고, 시험 자체가 수의사로서 알아야 될 것을 알면 합격을 시키는 취지의 시험이기 때문에 준비 과정 자체가 난해하지는 않다.
절대평가의 장점은, 일단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졸업하게 만든다는 거다. 따라서 재학 중 성적이 하위권이더라도 국시공부를 하면서 수의사로서 기초적인 지식은 모두 습득하고 졸업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미비점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 부분도 이후 졸업 후 수련과정을 거치거나 대학원 진학 등을 동해 경험을 쌓아 다들 실무에서 잘 해나가고 있다. 또 국시가 무슨 고시처럼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보니 본과 4학년 2학기라는 마지막학기까지도 실습 교육이 정확하게 진행되어 교육과정이 충실히 운용된다.
또 학기 중 열심히 공부해서 특별히 국시준비를 할 필요 없는 학생들은 국시가 임박해서까지 본인들의 관심분야에 대한 심화학습을 하기도 한다. 수의대 동기 중 이 기간에 내과교과서를 도식화해서 A2지 한 장에 기전을 정리해본 친구가 있었고, 대학원 진학이 결정되어서 본인의 세부전공에 대한 선행학습을 하면서 국시를 준비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실력 없는' 이들까지 변호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떤 전문교육기관에서 과반수를 전문교육의 충분한 이수자가 아닌 상태로 배출하는 게 어떻게 법조계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인지 나는 참 놀랍다. 어쩌면 지금의 로스쿨을 '과거 법대의 고시반'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의료계의 전문교육기관에서는 전국 모든 곳이 90% 이상의 졸업생이 자격을 갖춘 채로 졸업하도록 한다.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능력이 100인데 80만 갖춘 이가 있다면 기관이 책임지고 그를 유급시켜서 더 가르친 다음 다시 전문가로서 배출한다. 그런데 로스쿨은 희한하다. 그가 재학 중일 때에도 알아서 신림동 학원 강의를 듣고 공부하도록 방치하고, 대부분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해도 수료 내지 졸업시켜 신림동으로 보내버린다. 아니 아예 수료자로 배출해서 합격률을 속이려까지 한다. 로스쿨에도 유급제도가 있고 로스쿨의 유급자 비율이 의료교육기관의 유급자 비율보다 오히려 더 높은데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 결국 문제는 로스쿨은 그저 변시를 치를 특별한 자격에 불과할 뿐 로스쿨 자체가 변호사의 자격을 갖추게 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스쿨생 누구나 알 듯, 문제의 핵심에는 '실질상 30%대의 변시 합격률'이 놓여 있고, 로스쿨 교수들조차 그러거나 말거니 본래 사법시험 때는 더 소수만 합격했어 하는 식으로 관망하고 있다. 정말이지 나에게는 충격적인 전문교육기관의 모습이다.
로스쿨은 3년제다. 대부분의 로스쿨생이 그 3년 공부로 변호사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기에 부족함이 있는 거라면, 일단 내보내서 신림동을 전전하게 만들게 아니라 교육연한을 늘리거나 졸업 후 수련시스템을 개편해 후천적으로라도 졸업생의 능력을 신장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지금 전혀 하지 않고 있는데 내 생각에 결국 모든 것은 기존 법조인들이 변호사가 일정 수만 배출되길 바라는 욕심에만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