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명륜당성균관 강의실인 명륜당. 성균관 유생의 과거 장소로도 쓰였다. 명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606년(선조 36년) 다시 지었다. 명륜당은 한국전쟁 직후 임시 도서관으로 쓰이기도 했다.
백창민
성균관 유생이 공부에만 전념한 건 아니다. 오늘날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신입생 환영 행사가 있었고, 학생회라 할 수 있는 재회(齋會), 학생 대표인 장의(掌議)도 두었다. 정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집단 상소를 올리거나 수업 거부 같은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행실과 평판이 나쁜 성균관 교관을, 선조 때는 문제 있는 조정 대신, 관원, 내관을 비판하는 글을 써붙이는 벽서(壁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생이 상소를 올리는 유소(儒疏) 뿐 아니라 성균관에서 퇴거하는 공관(空館), 기숙사를 비우는 공재(空齋), 식당에 들어가지 않는 권당(捲堂)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 의사를 표출했다. 유소 하는 과정에서 유생이 줄을 지어 경복궁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우리 학생운동 역사가 '유구'했을 뿐 아니라 대자보, 수업 거부, 집단행동, 가두 행진 같은 시위 방법이 조선시대부터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킨 폭군 연산군은 성균관 유생의 국정 비판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창덕궁 가까이 있던 성균관의 철거를 명하기도 했다. 학생운동 역사뿐 아니라 대학과 학생운동 탄압 역사도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최고 교육기관답게 정도전, 권근, 김종직, 정여창, 김굉필, 김일손, 조광조, 이황, 이이, 유성룡, 이항복, 최명길, 윤선도, 정약용, 김정희, 박규수, 최익현, 김창숙, 신채호처럼 조선을 이끈 인재는 모두 성균관 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균관의 도서관, 존경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