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자는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방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여기에
"내가 일주일 늦게 들어왔는데, 그동안 고문을 받아가지고 아버지랑 동생들이 다 쓰러져 있고, 옆방에서는 비명이 다 들리고 너무 고통스러웠어. 고문 받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 차라리 나를 고문하지, 내가 들어오니까 수사관한테 다른 가족 고문하라고 시키고. 이쪽 방에는 부자가 고문을 받았는데, 아들은 여기서 고문 받고, 아버지는 건너편 방에서 받고. 아들이 이 방에서 아버지 비명이 다 들렸다고 하잖아. 아이고,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도 못하고."
가족과 친척 12명의 비명이 쉼 없이 들려오던 그날의 기억 탓인지 그녀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 번은 수사관이 저쪽 방에 있는 가족이 내가 다대포에 공작금을 받으러 갔다고 진술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안 갔다고 하니. 김태룡(남동생)이한테 가서 고춧가루를 주전자 물에 타서 코에다 부으라 하더라고. 그리고 전기 고문을 하라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갔다 왔습니다, 갔다 왔습니다, 했어.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더니 대뜸 뭘 타고 갔다 왔냐는 거야. 나는 다대포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랬더니 또 동생한테 고문하라 하고."
과거에도 몇 차례 남영동 대공분실에 왔지만 그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던 김순자는 "오늘따라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며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긴 아픔을 이야기했다.
"비명소리 들리면 다 우리 가족 같지요. 누가 있다 하더라도.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 하면, 와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가는구나. 그때는 내가 대신 다 받고 죽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 내가 얘기 했거든요, 수사관한테. 나를 죽이고 가족들 내보내 달라고. 그랬더니 수사관이 법이 그럴 수 없고 죄가 그럴 수 없다, 이러더라고. 법이 뭐고 죄가 뭐냐고 물어봤어. 생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간첩으로 만드는 게 법이면 죄는 뭐냐는 거야."
고문을 받다가 악에 받친 김순자는 수사관에게 따져 물었다. 죄는 당신들이 지은 거 아니냐. 당신들이 죄 없는 사람 가두고 죽이니 당신들이 죄인 아니냐고 물으니, 수사관은 따지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당신이 나가서 사람 죽이라고 하면 내가 죽여야 하느냐 반문하니, 할 말이 없었는지 그냥 따지지 말라고 했다며 당시의 엉터리 수사를 한탄했다.
"나라가 갈라져 있으면 어떻게 통일을 할지를 고민해야지. 왜 그걸 이용해서 우리를 간첩으로 몰고 죄인이라고 조작하고. 나라 가른 놈이 잘못했고, 통일 안 하는 놈이 잘못됐지. 우리가 나라를 갈랐나, 통일을 못하게 했냐 이거예요."
남영동 5층을 돌며 분한 마음과 눈물을 삼키던 김순자의 발길이 멈춘 곳은 당시의 고문실을 원형 그대로 유지했다는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509호실이었다. 그곳은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은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김순자가 고문을 받았던 곳이기도 했다.
박종철이 당했던 방에서 그녀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