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 정몽준(오른쪽 끝)과 함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부부를 만난 정주영 현대(왼쪽 끝). 서울시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의 ‘아산 기념 전시실’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정부들이 상업을 지식산업·농업·공업 다음에 배치한 것은 어느 정도는 상인들을 통제할 목적에서였다. 토지에 얽매이지 않고 곳곳을 이동하는 상인이 많아지면 농업생산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 수집능력이 탁월한 그들이 많아지면 국가가 백성을 통제하기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상인이나 기업인은 어떻게 보면 보수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진보적이다. 경영 활동을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고 현존 정치체제의 수호에 협력하기도 하지만, 정보 전달이나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공기를 사회에 불어넣기도 하고 결정적 순간에는 개혁적이거나 혁명적인 정치집단에 자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다시 도래한 남북경협 기회 꼭 붙들고 놓치지 않아야
세계사가 요동치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정주영과 김우중 같은 기업인들은 남들보다 앞선 시야로 남북경협 무대에 뛰어들었다. 남북경협이 갖는 의미를 감안하면, 그들의 모험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진보적인 일이었다. 물론 정부의 승인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 또 김우중의 경우에는, 노태우 정권이 정주영을 견제하고자 그를 지원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열정과 조직과 자금과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남북경협에 뛰어든 것은 거기서 이윤 창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윤이 생길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정부가 등을 떠밀었다면, 차라리 뇌물을 주고서라도 빠지려 했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이 김우중을 대타로 선택한 것은, 그 역시 정주영처럼 경협에 대한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정치권의 견제나 반발을 무릅쓰고 그런 모험에 뛰어든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성장 동력이 한계에 다다른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길은 북한과 시베리아 벌판에 선제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경협이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라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지 못했다면, 이윤을 따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화가 곧 경제이고, 평화가 곧 안보라는 것을 남보다 먼저 파악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상인이나 기업인들이 평소에는 보수적이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진보적이 되기도 하는 역사 속의 무수한 사례들을 연상케 하는 일이다.
만약 1993년에 제1차 북핵위기가 발생하지 않고 1991년의 남북 화해 무드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개성공단 사업이 합의된 2000년보다 훨씬 먼저 해주공단 같은 데서 남북경협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일찍부터 경협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았다면,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때처럼 경제 외적 요인으로 인해 경협이 중단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남북경협은 한국 경제가 북한뿐 아니라 시베리아로도 뻗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유럽으로까지 직행하게 만들 수 있는 꿈의 무대다. 이제까지 태평양·인도양 등을 무대로 전개되던 한국 기업들의 수출이 새로운 루트를 갖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에 해주공단 가동 같은 것을 통해 이미 이뤄질 수도 있었을 그런 일이, 2019년 현재까지도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 경제가 그간 얼마나 시간을 허비했는지 느낄 수 있다. 이제라도 만회하는 길은 딱 하나, 지금 다시 도래한 남북경협 기회를 꼭 붙들고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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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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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황해도 해주에서 남북경협 이루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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