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원주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총회 격려사모습
무위당 사람들 제공
장일순은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았다.
그것이 '생명'이라는 시대정신과 '협동'이라는 전통적이고 구체적인 가치의 결합인 한살림운동이었다. 이웃과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활철학이었기에 '쓸모 있는' 일을 다시 구상한 것이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꾸지람 중에 '상하소반(上下所反)',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장일순은 쓸모 있는 사람, 쓸모 있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한살림운동도 이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장일순은 강의ㆍ대담ㆍ연설을 많이 한 편이지만, 직접 글을 쓴 것은 별로 없다. 몇 권의 책이 나왔으나 모두 강연ㆍ대담의 모음집이다. 예외가 있었다. 한살림운동을 시작하면서 「공동체적 삶에 대하여」는 직접 쓴 글이다. 한살림운동의 철학적 의미가 담긴다.
옛 말씀에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이니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과 땅은 나와 한 뿌리요, 세상 만물은 나와 한 몸이나 다를 바 없다는 얘기입니다.
일체의 현상을 유기적 관계에서 보면,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만민은 다 예수님 말씀대로 한 형제요, 온 우주 자연은 나의 몸과 한 몸이나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적 삶은 이 바탕 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이 사물에 대해서 선악과 애증을 갖게 되면, 취사선택이 있게 마련이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선호(選好)의 관념은 이(利)를 찾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현실에서 이웃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이들은 선의의 경쟁을 말하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악의의 경쟁도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인간이 자기 분열을 한없이 전개함으로써 자멸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영성적인 절대만을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여 상대적인 현상을 무시하는 삶도 아니고, 상대적인 다양한 현실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삶도 아닌 바탕에 공동체적 삶은 있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나누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며 사양하며 검소한 삶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또한 인간과 자연과의 사이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삶에는 꾸밈이 없을 것입니다.
(주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