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법원이라고는 문턱도 넘어보지 않았던 수혁 부모님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소문 끝에 이들은 내가 일하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를 찾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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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허탈했다.
경찰은 수혁이 촉법소년에 해당하자 기계적으로 이 사건을 소년법원에 넘겼다. 장난삼아 스프레이를 뿌려본 수혁은 졸지에 '재물손괴범'이 됐다. 하지만 사건을 살펴본 판사는 수혁을 법정에 세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치 없이 종결 처리할 수 없어 조사관에게 살펴보도록 했다. 그래서 조사관이 소환장을 보낸 것이었다.
"별거 아니네요. 변상도 다 하셨고, 아파트 측도 처벌을 원하지 않고. 그냥 수혁이가 잘살고 있나 얼굴 한 번 보려고 하는 거예요. 걱정할 필요 없으세요."
"정말 그런 건가요? 그래도 혹시 소년원에 가거나 그러지는 않을까요?"
"아이고, 아버님! 이런 걸로 소년원 가면 소년원 넘쳐나서 운영도 못 해요. 걱정 마세요."
최대한 안심시켜드리려 했지만, 난생 처음 법원 소환장을 받은 부모님은 안절부절했다. 이후 법원에 출석하기까지 한 달 반, 다시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한 달, 총 2개월 보름여 동안 수혁네 집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수혁 아버지의 전화에 매번 안심하시라고 달랬다.
극도로 긴장했던 아버지는 수혁에게 자주 화를 냈다. 처음에는 어린애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는 도대체 왜 그런 장난을 쳐서 문제를 일으켜!"라고 윽박지르게 됐다. 친구 같던 아버지와 아들은 점점 멀어졌다.
수혁의 사건은 심리불개시 결정으로 끝났다. 형사사건으로 치면 공소 기각이다. 그제야 부모님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민감한 시기를 겪는 수혁에게 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 가족의 모습은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
2008년 소년법 개정의 성적표
지난 19일 법무부는 '제1차 소년비행예방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핵심은 촉법소년과 형사미성년자 연령 기준(만 14세 → 만 13세)을 낮추는 것이었다. 법무부는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서울 관악산 여고생 집단폭행 등 날로 흉포화·집단화되는 청소년 강력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소년범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여론과 실효성 있는 소년범죄 예방대책을 마련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과 같은 논리다.
그런데 2008년 결과를 살펴보면, 10년이 지난 지금 내놓은 방안이 '정답'인지 의문이다. 수현과 그 가족을 아프게 했던 2008년의 소년법 개정은 실패작이었다. 촉법소년의 범위가 만 12~13세에서 만 10~13세로 두 배 넓어졌지만, 처벌 건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대검찰청 범죄백서에 따르면 경찰은 2008년 1만 781건, 2009년 1만 1609건의 촉법소년 사건을 소년재판부로 송치했다. 하지만 전체 소년보호사건 접수 인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5.8%에서 24.2%로 다소 감소했다. 2010년에는 건수와 비율(9212건, 20.8%) 모두 줄었다. 이러한 감소세는 2012년(1만 2799건, 23.8%)을 제외하고는 계속 이어져 2016년에는 6788건(20.1%)으로까지 내려갔다.
나이가 어려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부당하며 소년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막상 법을 바꿔놓고 보니 처벌할 대상이 없었다. 애초부터 촉법소년 문제가 과대 포장됐다는 반증 아닐까. 실제로 2008년 분위기는 정확한 실태 파악도 없이 '법부터 바꾸고 보자'는 식이었다.
'더 많은 소년을 처벌해야 한다'는 이들이 간과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