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1950년 한국전쟁을 연상해보면, 주한미군이 'for USA'라는 게 한층 명확해진다. 그때 만약 미군이 북·중 연합군에 패했다면, 미군은 한반도로부터 멀리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물론이고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까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괌과 하와이에 대한 지배력에까지 영향을 주어, 미국의 서부전선이 미국 서해안에 조성되는 결과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세계 교역이 바닷길에 의존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중 연합군이 승리했다면, 북한은 바다로 나가는 길을 뚫기 위해서라도 오키나와를 미국 영향권에서 독립시키려 했을 것이다. 북한이 바다로 나가는 길은 현재까지도 일본-대마도-남한-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 라인에 의해 봉쇄돼 있다. 이 라인은 북한의 해상 교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중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면, 북한이 오키나와 민족해방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북·중 연합군이 승리했다면, 중국이 필리핀을 미국 영향권에서 빼내고자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미서전쟁)의 결과로 미국에 넘어간 필리핀은,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진출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중국은 자국 코앞에 있는 필리핀에서 어떻게든 미국의 흔적을 몰아내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과 오키나와의 관계를 끊고 중국은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끊었다면, 1898년에 미국 식민지가 된 괌도 미국 영향권에서 떨어져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은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면, 미국의 적대 세력이 태평양을 넘나들며 미국 서해안을 위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이란 바다는 넓기는 하지만, 중간에 큰 섬이 없다. 그래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동안에 군사적 반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것은 태평양 서쪽에서 미국 방어선을 뚫은 국가가 미국 서해안까지 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이 태평양 지배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1886년에 인디언과의 전쟁을 끝내고 동아시아 진출에 나선 미국은 1898년과 1899년에 집중적으로 전쟁을 벌여 태평양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2년 동안 미국은 하와이·필리핀·괌·사모아·웨이크섬을 점령했다.
짧은 기간 동안 수차례의 전쟁을 거쳐 태평양 지배권을 확립한 미국은, 곧바로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얻게 됐다. 1905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는 합의를 도출한 것은,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해졌기에 가능했다.
필리핀을 떠났던 미군은 왜 다시 돌아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