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프레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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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차관을 얻어오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정권이 수수료를 챙기거나, 미국 공법 제480호(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에 근거한 농산물 원조라 하여 'PL-480 원조'로 약칭되는 경제지원이 박정희 정권의 정치자금으로 전용된 일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 보도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레이저 보고서>를 읽다 보면, 그 정도에 놀라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경제개발의 결실을 자신들의 치부에 이용하는 박정희 정권의 실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박정희는 국내 기업의 해외 수출만 도운 게 아니라, 외국 기업의 국내 활동도 은밀히 지원했다. 그것이 이익이 됐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이 생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박정희한테 뇌물을 제공한 미국 석유회사 걸프오일에 관해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1975년) 5월 16일의 공청회에서 걸프오일 주식회사는 전 세계에 걸쳐 지불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외국 정치기부 중 80%가 민주공화당으로 갔다고 공개했다."
걸프오일이 전 세계에 뿌린 검은 기부금의 80%가 박정희 정권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걸프오일뿐 아니었다. 다른 나라 기업들도 박정희 정권에 뭔가를 주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갔다.
"외국 기업들 역시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데 이용됐다. ······ 칼텍스 석유회사는 적어도 100만 달러를 제공했다. ······ 행정부 보고서는 또 다른 미국 기업의 한국인 대리인이 수수료로 청와대에 수백만 달러를 약속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 한국의 지하철 차량 판매에 연루된 4개의 일본 무역상사들이 미국 은행계좌를 통해 120만 달러를 송금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정보 수집 못지않게 '자금 수집'을 위해서도 활용했다. 중앙정보부를 주식시장 '작전 세력'으로도 활용했다.
"워커힐 리조트 건설과 일본제 자동차 수입과 같은 상업적 거래들에 한국 중앙정보부가 깊이 빠져들었다는 믿을 만한 표징들이 있다. 그 후 한국 중앙정보부가 워커힐 프로젝트에서 수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1963년 봄에 한국 중앙정보부는 주식시장의 은밀한 조작에 휩쓸려 들어갔고, 이 공작으로 거의 4천만 달러를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돈들은 대통령 탁자 뒤 금고에..."
그런데 박정희의 정치자금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이 황당해 한 부분이 있다. 5·16 쿠데타 직후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기소된 기업들이 어느새 정권의 후원자들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1970년 6월 민주공화당에 십만 달러씩을 기부할 한국 기업들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김성곤에게 직접 지시했다. 그 명단에는 한국의 거대한 재벌들인 럭키그룹·현대건설·삼성그룹과 김성곤이 경영하는 쌍용그룹이 포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기업 총수들의 다수는 1961년과 1962년 사이에 박정희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기소됐었다."
경우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아무한테서나 정치자금을 흡수하다 보니, 박정희 자신이 '떼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돈들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탁자 뒤의 금고 안에 보관되었다고 한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박정희뿐 아니라 부인 육영수도 별도의 정치자금을 관리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말을 인용해 "박 대통령과 박의 부인(육영수), 정일권·이후락·박종규 등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비슷하게 제공된 자금들도 김성곤이 보관했다고 증언했다"고 말한다. 공화당 자금책 김성곤이 육영수 비자금도 따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또 박정희의 측근들도 떼부자가 됐다. "1970년경에는 이후락·김성곤·김형욱이 각각 축적한 개인 재산이 1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 청와대 고위급 관리가 말했다"고 보고서는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