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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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류의 중요한 경험과 지식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맹자>에 '독서상우(讀書尙友)'라는 고사가 나온다. 책을 읽음으로써 옛사람과 벗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사에는 남의 일이 없다. 천 년 전의 사람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을 오늘의 내가 똑같이 겪을 수도 있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려도 마치 겪어본 사람처럼 담담히 처리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자조론>의 저자 새뮤얼 스마일즈는 책을 좋은 친구라고 정의했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책은 참을성 있고 기분 좋은 친구다. 좋은 책은 어렵고 힘들 때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좋은 책은 항상 친절하게 반긴다. 젊어서는 즐거움과 가르침을 주고 늙어서는 위로와 위안을 준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데 독서만 한 것은 없고, 읽으면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 송나라 태종은 '개권유익(開卷有益)', 즉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흔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하여 고금동서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독서를 강조했고, 독서 관련 명언도 차고 넘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읽으면 해를 끼치는 책도 많다. 위험한 책, 불순한 책, 나쁜 책, 책의 탈을 쓴 가짜 책도 있다.
세계 역사상 최대의 파괴적 분란을 일으킨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나폴레옹 등도 독서광이었다. 그들은 많은 책을 읽고 그 자양분을 나쁜 일에 활용했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
좋은 책의 기준은 명백하다. 내 생각과 행동을, 그리고 삶을 조금이나마 건설적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다. 잔혹한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어떤 책을 읽고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는 좋은 책의 힘을 말해준다.
서점에 나와 있는 독서법에 관한 책만 해도 수십 권은 넘는 듯하다. 어떤 책이 조금 팔린다 싶으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 우리나라 출판계의 현주소이다. 근래에는 메타북(책에 대한 책-편집자 주)도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법의 백미(白眉)는 주희의 '독서법'이다.
"죄인에게 자백을 받아내듯이 읽어라"여러 해 전 청계천 헌책방에서 <주자서당은 어떻게 글을 배웠나>라는 책을 만났다. 주자학의 핵심인 '주자어류' 가운데 독서법을 다룬 10권과 11권을 옮기고 풀어쓴 책이다. 옛 유학자들의 공부와 독서 철학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독서는 배우는 사람의 두 번째 일(讀書乃學者第二事)"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첫 번째 일'이란 스스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자에게 독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일이고, 독서는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독서는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구절은 시퍼런 칼날처럼 내 무딘 정신을 찌르고 들어왔다. 주희의 독서법은 책을 통한 치열한 도 닦기와도 흡사한 구석이 있는데, 주희에게서 비롯된 주자학을 도학(道學)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는 모름지기 마치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곧바로 적진에 뛰어들어 모조리 죽여 버리듯이, 마치 가혹한 관리가 옥을 다스림에 곧바로 죄인을 힐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듯 해야 한다. 오직 이와 같이 해야만 독서의 도에 통할 것이다."
이처럼 주자의 독서법은 무섭도록 서늘하다. 또한, 미련할 만큼 반복해야 한다는 구절도 나온다.
"무릇 사람이 열 번을 읽고도 이해되지 않으면 스무 번을 읽고, 다시 이해되지 않으면 서른 번을 읽고, 그렇게 쉰 번까지 읽으면 모름지기 이해되는 순간이 있게 된다. 쉰 번에도 깜깜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자질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열 번도 읽어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고 말한다." 주자가 강조한 반복 독서는 학문을 성취한 위인들의 독서법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도 무척이나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논어> '공야장편' 끝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열 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진심을 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자 자신의 재능이나 성품은 최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배움에 대한 정열만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엿보이는 구절이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자꾸 숙독하였기 때문에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