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쉬잔 발라동,1923, centre pompidou)
centre pompidou
속옷 차림으로도 이렇게 강해 보일 수 있을까. 정면을 응시하지 않지만 왠지 보는 이의 눈을 깔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다. 섹시는 언감생심, 우아한 드레스도 아니고 더구나 누드도 아니다. 파자마 차림에 피곤한 듯 담배를 입에 물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인. 파란 침구 위에 놓인 책들은 그녀가 지적인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모델의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이 그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자유로움'이다. 남의 시선에 구속은커녕 연연해 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온 센 언니가 내게 '그래도 된다'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여자답다'는 말을 만고의 칭찬으로 여기며 그 틀 안에서 사느라 때때로 답답하던 내게 '네 맘대로 살아도 아무 일 없다'라며 툭 말을 건넨다.
세탁부의 딸에서 화가가 되기까지이 그림은 쉬잔 발라동이 그린 '푸른 방'(1923) 이란 작품이다. 본명 마리 클레망틴 발라동(1867-1938). 세탁부의 혼외자로 태어나 10살부터 직공, 양재사, 청소부 등 갖가지 일을 전전하다 파리의 서커스단 무희가 된다. 하지만 그네에서 낙마하는 사고로 서커스단에서 쫓겨난 후 당대 상징주의 미술의 거장 퓌비 드 샤반의 눈에 띄어 그의 모델이 된다.
그의 모델을 하는 몇 년 동안 그녀는 가까이에서 화가의 작업을 눈여겨보며 남몰래 그림을 연습한다. 그녀의 그림을 보며 화를 내는 그를 떠나 다시 르누아르의 모델이 된다. 당시 모델이라 하면 '화가의 정부'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는 18세의 나이에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들을 낳게 된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린 소녀는 몸도 추스르기 전에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아빠가 누군지 모르지만 화가임이 틀림없는 그 아이가 '몽마르트르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이다.
르누아르 부인에게 또다시 쫓겨난 그녀는 물랭루주의 화가 로트레크를 만난다. 그의 모델이 되어, 연인이 되어 지내는 동안 로트레크는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재능을 발견한다. 로트레크는 그녀를 인상주의 거장 드가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녀는 드가의 밑에서 미술교육을 받는다. 그녀는 드가를 만난 그날을 '내가 날개를 단 날'이라고 회고했다. 로트레크는 그녀에게 '쉬잔 발라동'이란 예명을 선물했고 평생 이 이름으로 살았다. 이 시절, 그녀는 로트레크에게 니체와 보들레르의 책을 빌려 탐독했다. '푸른 방' 안에 책을 그려 넣은 이유가 있다.
드가는 그녀의 그림 3점을 구입해주고 전시에 참여하게 도와주며 그녀가 화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귀족 집안의 배운 여자도 화가로 성장하기 힘든 시대에 그녀는 오로지 재능과 노력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 행로가 어찌 평탄했겠는가.
퓌비 드 샤반, 르누아르, 드가, 로트레크등 인상주의 최고의 화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으나 모두가 동일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각자가 보고 싶거나, 부각시키고 싶은 면을 그려서일 것이다.
나는 로트레크가 그린 쉬잔을 좋아한다. 로트레크의 쉬잔은 그와 그녀의 영혼이 녹아있다. 삶의 고단함, 가난, 때때로 엄습하는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의식, 모든 게 그림에 녹아있다. 거기에 로트레크의 시선. 그녀를 성적 대상화하기보다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그 담담한 시선이 좋다. 그가 그런 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1893년 그녀의 나이 28세, 운명의 사랑을 만난다.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은 영혼으로 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칭했던 에릭 사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듣고 있자면 드뷔시의 달빛보다 더 달빛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짐노패디' 그 곡의 작곡가 말이다.
친구는 서로 닮는다더니 드뷔시와 사티는 비슷한 느낌의 곡이 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할 때 쓴 곡이 '난 널 원해(je tu voix)'이다. 두근대는 가슴으로 노란 프레지아 한 다발을 들고 그녀에게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곡이다. 첫눈에 감전된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 그녀는 그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고 그 작품이 그녀의 최초 유화작품이다. 그의 나이 27세.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