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안 보인다!"

[김찬곤의 말과 풍경 13] 보이는 만큼 새롭게 알고 느낀다

등록 2018.03.12 10:31수정 2018.03.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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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첨성대 모습 1921년(신유년) 휘문 고등보통학교 4학년 학생들의 경주 수학여행 사진이다. 1921년이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있은 지 이태 뒤이다.
1920년대 첨성대 모습1921년(신유년) 휘문 고등보통학교 4학년 학생들의 경주 수학여행 사진이다. 1921년이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있은 지 이태 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1993년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내면서 머리말에서 한 말이다. 원래 원문은 이렇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나는 이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사실은 꼭 맞는 말도 아니지만) 가슴 저 밑바닥에서는 왠지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아는 것', 다시 말해 '지식'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떤 '억압'이나 '배제', '주눅' 같은 것을 느낀다. 절에 가서도 무얼 모르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꽃을 보더라도 그 꽃 이름을 모르니까 그 꽃이 편안하지도 예쁘지도 않다. 나는 모르니까. 눈에 블라인드가 쳐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유홍준의 말을 반대로 뒤집어 놓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은 느끼는 만큼 더 깊이 알게 되고, 보이는 만큼 새롭게 알고 느낀다." 이 말은 지식에 기대지 않고 세상을 보겠다는 나만의 고집이기도 하다. 또 사실 지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꼭 맞는 것도 아니고, 그 지식 때문에 도리어 진실을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남쪽 창문으로 들어가 위를 올라다본 모습 겉면과 달리 돌을 다듬지 않았다. 이곳이 위로 올라가는 통로라면 평평하게 다듬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남쪽 창문으로 들어가 위를 올라다본 모습겉면과 달리 돌을 다듬지 않았다. 이곳이 위로 올라가는 통로라면 평평하게 다듬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국립문화재연구소

맨 꼭대기 정자석 모습 두 사람이 서기에도 위태롭다. 첨성대가 천문대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아직 뚜렷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형편이다.
맨 꼭대기 정자석 모습두 사람이 서기에도 위태롭다. 첨성대가 천문대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아직 뚜렷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형편이다.국립문화재연구소

첨성대에 오르는 모습 사다리를 타고 남쪽 창문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사다리를 타고 정자석에 오르는 모습이다.
첨성대에 오르는 모습사다리를 타고 남쪽 창문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사다리를 타고 정자석에 오르는 모습이다. .

경주의 첨성대를 볼 때,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라는 '지식(아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런 지식으로 보게 되면 꼭 그만큼만 보이고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 보이게 한다.

첨성대는 아래 기단에서 꼭대기 정자석까지 9.108m밖에 안 된다. 아파트 3층 높이다. 우리는 학자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9미터 위에서 보나 9m 아래에서 보나 별이 달리 보이겠나, 무슨 차이가 있나, 차라리 경주 남산에 올라 보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고 말이다. 더구나 가운데 남쪽 창문을 통해 힘들게 꼭대기에 오르더라도 두 사람밖에 설 수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별을 관측하다 속이 불편하면 다시 그 구멍으로 내려와 볼일을 봐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 천문대가 이렇게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지식이 완벽하지 않듯,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아는 만큼 안 보이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아는만큼안보인다 #첨성대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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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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