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
독일 쾰른 발라츠-리하르츠 미술관
우선 이 그림은 어린 시절 장미넝쿨이 우거졌던 우리 집과 닮아있다. 작은 시골집 대문 위로 장미 넝쿨이 우거지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있었던 우리 집. 언니, 오빠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나 혼자 남아 그 넝쿨 아래서 땅을 파기도 하고 온갖 벌레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 잊고 있었는데 이 그림을 마주하자 그 옛날 집이 떠올랐다.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 어린 내게 무슨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집도 아니었는데. 추억이란 이런 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기만 해도 맘이 그림 속 빛처럼 일렁인다.
눈부신 햇살 아래 아이의 볼이 환하다. 아이를 둘러싼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도 아이를 빛나게 한다. 열려있는 대문 밖에서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불어와 뜨거운 볕을 식혀줄 것 같다.
낮은 담장 사이로 보이는 시골 마을, 그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 뜬금없이 눈물겹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장미넝쿨 대문 아래에서 놀고 있던 나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의 시선도 이처럼 따뜻했겠지. 이제 그 때의 엄마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이 그 때의 어린 나를 바라본다.
그림으로 힐링한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내 몸 속의 지치고 오염된 마음이 순간 정화된 듯하다. 막 착해지고 순수해지고 싶다.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아들의 한 마디.
"인상파의 아버지 마네가 인상파라고 이름을 정한 거야?""아니, 프랑스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라는 사람이 낙선전에 출품한 모네의 그림 '해 뜨는 인상'을 보고 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라고 기사에 썼는데 그게 이름이 되었대."낙선전은 파리의 유명한 국선미술대회인 '살롱전'에 떨어진 화가들이 그 옆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그게 낙선한 사람들의 전시라 '낙선전'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그 전시가 인상파 화가들의 첫 번째 전시였다는 이야기. 사진기 발명이 화풍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전시를 보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18살이 되어 이미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큰 아이의 모습에서 '접시꽃과 어린아이' 모습이 보인다. 식당 유리창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아이는 눈이 부셔 하며 메뉴판을 보고 있다.
덩달아 눈이 부신 나는 '꽃밭의 어린 소녀'와 '메뉴판을 든 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베르트 모리조가 바라봤던 시선처럼 나도 내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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