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시민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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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향력 퇴조와 더불어, 재스민혁명이 보여준 또 다른 것이 있다. 혁명의 새로운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이것은 2016년 한국 촛불혁명에서도 나타났다. 바로 '영웅 없는 혁명'이다.
고대로부터 민중은 살기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영웅의 출현을 고대했다. 미륵이나 정도령 또는 메시아 등으로 불리는 영웅이 등장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갈망했다. 영웅이 나타나야 혁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혁명에서 영웅이 필요한 것은, 혁명에 필요한 조직·자금·무기·이념을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권력이 시퍼렇게 눈 뜨고 감시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용이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의 견제를 뚫고 그런 것들을 갖추는 데 성공한 지도자가 민중의 눈에 영웅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와 20세기에 교통과 통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전국적 대중조직의 건설이 쉬워졌다. 이념 전파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반정부적인 군중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 쉬워지다 보니, 군사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게 됐다. 군중의 규모만으로도 경찰력을 압도할 수 있게 되면서, 무기 쓸 일이 그만큼 적어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소자본'으로 혁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19세기 초반의 홍경래는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평안도 갑부들과의 관계부터 돈독히 했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할 필요성이 현저히 적어졌다.
이 같은 변화는 혁명에서 영웅의 필요성을 현저히 떨어트렸고, 이것은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영웅 없는 시민혁명이 빈발한 원인 중 하나였다. 옛날 같았으면 한 지역의 사건·사고로 끝났을 우발적 민중봉기가 20세기부터는 전국적 시민항쟁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21세기 들어 확산된 인터넷과 SNS는 그런 경향을 한층 더 부추겼다. 인터넷·SNS를 통해 대중이 지식인 못지않게 정세를 파악하고 번개 모임 하듯이 군중집회를 열 수 있게 되면서, 영웅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더 떨어졌다.
옛날 혁명에서는 대중 그 자체가 조직을 이루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영웅이 이끄는 조직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SNS 시대에는 대중 자체가 하나의 조직을 이룰 수 있게 됐다. 평소엔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곧바로 집회 장소에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트렌트가 2016년 한국 촛불혁명을 지배했다.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모임의 장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대다수 참가자들은 그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개인이 똑똑해져 영웅이 사라진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