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칠드런에 들어가는 한국 교사들.
윤근혁
이런 훈계와 강요를 버리는 대신 '귀 기울임' 교육으로 유명한 학교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북부지역 레지오 에밀리아 시에 있는 '레지오 칠드런'이다.
영유아부와 초등부, 3~12살의 아이들이 학습하고 있는 이 학교는 세계 2차 대전 뒤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 접근법'을 잘 구현하는 곳이다. 1940년대부터 레지오 에밀리아 지역 교육시민단체와 교육학자가 함께 만든 이 접근법은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믿는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훈계자가 아닌 동기부여자와 조력자 노릇을 한다.
지난달 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연구년제 교사 20여 명이 이 학교를 방문했다. 건물 안에 만들어놓은 광장을 빙 둘러 교실이 펼쳐져 있다. 치즈 공장을 개조해 2008년에 만든 건축물이다.
한 학급은 26명으로 학생 수가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교사는 한 학급에 2~3명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놓은 협력수업을 하는 셈이다.
교실을 둘러보기 시작하자마자 한국 교사들은 장벽을 만나야 했다. 한 남자아이가 다음처럼 말하고 양팔을 뻗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멈춰라. 여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다."
이곳은 4살 아이 서너 명이 오랫동안 만든 공포의 공간이었다. 스피커에서는 괴성이 들렸고 음침한 옷들도 걸려 있다.
교실 안 다른 곳도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둠을 이뤄 제각기 자기들의 학습 공간에 앉아 있다. 탑 세우기를 하는 모둠도 있었고, 레고를 조립했다가 부수는 모둠도 있었다.
짝을 이뤄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낙엽을 모아놓고 확대경으로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취재한 결과를 기사로 쓰는 모둠도 있었고,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모둠도 있었다.
유치부, 초등과정 6개의 교실을 둘러보았는데 아이들을 한곳에 일제히 모아놓고 훈계하는 교사는 없었다. 아이들은 제각기 프로젝트 학습을 하는 데 정신을 모았다. 외부인이 들어와 쳐다보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빨리, 잘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아"들판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가 있는 한 교실에 들어섰다. 4학년 학생 넷이 지점토로 다리를 만들고 있다. '섬과 섬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 이와 같은 학습문제에 대해 모둠끼리 토론한 뒤 이 같은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자 잘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궁리하고 활동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협력 활동을 최고 목표로 앞세운 것이다. 나 혼자만 멋있게, 빨리 만드는 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리라.
이 교실 교사는 허리를 굽힌 뒤 동영상 기기를 들고 학생들을 계속 촬영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이 공동 작업을 얼마나 잘 하는지 기록해서 학부모와 상담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레지오 칠드런이 한국 교사들을 놀라게 한 것은 3가지 모습이었다.
우선, 제각기 모여 학습을 하는데도 큰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한국교사는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들이 이처럼 한결같이 차분할 수 있는 것이냐"며 놀라워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학습이 유아 때부터 몸속에 배어 있기 때문일까?
두 번째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감이 철철 넘친다는 것. 한 초등부 남자아이는 "(한국교사들이) 이탈리아 말을 할 줄 알면서 물어보는 것이냐"고 너스레를 떤 뒤, 친구들과 1년여간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만든 지도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했다. 주눅 들어 눈치를 살피는 아이는 발견할 수 없었다.
세 번째는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식 수업을 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한국교사들은 "나라에서 정해놓은 교육과정이 있을 텐데 학생들 중학교 진급에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레지오 칠드런 관계자는 "국가 교육과정이란 말 자체가 없다"면서 "(큰 틀의) 기본 교육방안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재량껏 교육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밝은 모습으로 함께, 그리고 자유롭고도 차분하게 수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이 현장에서 한국 교사들 몇몇의 얼굴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영유아부 교실을 둘러볼 때 더 그랬다.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