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큰사진보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李玖·1931∼2005) 씨의 전 부인인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4세. 사진은 2005년 내한 때 모습. 이구는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자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1897∼1970)의 유일한 생육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이다.연합뉴스 영친왕 이은의 며느리이자 이구의 아내였던 줄리아 리가 지난 11월 26일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하와이의 요양병원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이 6일 언론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3·1운동 4년 뒤인 1923년에 태어났다. 향년 94세. 줄리아 리는 '전 이왕세자(李王世子)'의 부인이었다. '전 황태자의 부인'이 아니었다. 이구는 이왕세자였다. 황태자로 표기한 글이 많지만, 아니다. 이를 명확히 하려면, 이구의 아버지인 영친왕 이은의 지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영친왕은 대한제국 때 받은 칭호다. 친왕(親王)은 대한제국 이전의 대군(大君)이나 군(君)에 상응했다. 황태자가 아닌 황자한테 주어지는 칭호였다. 1907년 이복형 순종이 황제가 되면서 이은은 황태자가 됐다. 이때부터는 영친왕이 아니었다. 그냥 황태자였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순종은 황제에서 이왕(李王)으로 격하되고 이은은 이왕세자(李王世子)로 격하됐다. '이왕가'로 격하된 대한제국 황실 큰사진보기 ▲영친왕과 순종. 서울 덕수궁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대한제국은 1910년에 망했지만, 황실은 이왕가(李王家)란 이름으로 1947년까지 존속했다. 이왕가란 명의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멸망 직전의 합의 때문이었다. 1910년 8월 22일 조인된 이른바 한일합병조약 제3조에서는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 및 그 후비와 후예로 하여금 각기의 지위에 적응하여 상당한 존칭·위엄 및 명예를 향유하게 하며 또 이것을 유지함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 황제은 일본 군주의 제후 자격으로 이왕의 지위를 갖게 됐다. 1926년 이왕 순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은이 이왕세자에서 이왕으로 격상됐다. 5년 전인 1921년 이은이 장남 이진을 낳았지만, 이듬해 잃었다. 그래서 1931년에 낳은 이구가 이왕세자 지위를 갖게 됐다. 그러므로 이구는 황태자가 아니라 이왕세자였고, 줄리아 리는 황태자의 부인이 아니라 전 이왕세자의 부인이었다. 대한제국 황실 전문가인 김을한 기자가 쓴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속에 이구의 어머니인 이방자의 회고가 담겨 있다. 회고에서 이방자는 줄리아 리를 "우크라이나와 독일계 미국인을 양친으로 둔" 사람으로 소개했다. 큰사진보기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에 실린 영친왕 부부 및 줄리아·이구 부부의 사진.김종성 "진정으로 동반자가 되어줄 아내를 택하고 싶다"줄리아 리를 처음 만날 당시, 이구는 MIT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구는 한국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부터 미국 생활을 했다. 줄리아 리와 이구가 친해진 계기가 이방자의 회고에 언급됐다. "구의 이야기로는 줄리아양이 미술학교 출신으로 실내장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하던 중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격, 취미, 일에까지 공통점이 많은 탓인지 둘은 매우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는 것입니다."줄리아를 부모한테 소개할 때 이구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래 봬도 양키 걸 같은 화려한 가정의 여성보다는, 검소한 생활이지만 일과 취미를 통해 진정으로 동반자가 되어줄 아내를 택하고 싶습니다."영친왕 부부는 이들의 교제를 내심으로는 반기지 않았다. 영친왕도 이방자도 국제 결혼을 싫어했다. 자신들이 국제결혼을 한 것부터가 못마땅했다. 영친왕 부부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다. 일본이 강제로 맺어준 결혼이었다. 영친왕도 이방자도 원치 않았다. 할 수 없이 한 것이다. 이 부부는 국제결혼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줄리아와 이구의 만남을 반대하지 않았다. 속으론 좀 그랬지만, 축하하고 응원하려고 노력했다. 아들의 행복을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다. 이방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구가 일평생의 반려자로 적당하다 생각하고 진정으로 애정을 느낄 만한 사람이면 인종 같은 것은 불문에 부치자는 것이 바깥어른과 저의 생각이었습니다."대한제국 황실은 20세기 초반에 말도 못할 고난을 겪었다. 이로 인해 나라와 백성을 잃었다. 왕실 가족도 흩어졌다. 일본에 인질로 끌려간 가족들도 있었다. 영친왕의 조카인 가수 이석이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간절히 부를 만했다. 그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 장미꽃 넝굴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라고 소망을 담아 노래했다. 큰사진보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李玖·1931∼2005) 씨의 전 부인인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4세. 사진은 젊은 시절의 부부 모습. 연합뉴스 행복한 가정을 간절히 염원할 만큼, 황실 사람들은 가족 사랑에 목이 말랐다. 영친왕 부부도 그랬다. 예전 황실의 위신보다는 아들의 행복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부부의 후원 속에 줄리아와 이구는 1957년 약혼하고 1959년 결혼했다. 영친왕 부부가 지금이라도 들으면 살짝 놀랄 수도 있는 일이 있다. 이구는 줄리아보다 여덟 살 적다. 부모의 선입견을 우려했는지, 이구가 줄리아의 나이를 정확히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방자의 회고에 이런 언급이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구가 택한 여성인 만큼, 줄리아양은 나이가 한 살 위이긴 하지만 구가 품은 모든 희망을 그대로 갖춘 여성이었습니다."이렇게 줄리아와 이구는 영친왕 부부의 '절제된 환영' 속에 행복한 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에는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한국에 와서 창덕궁 낙선재에도 기거했다. 이혼 종용에 시달린 줄리아 리... 결국 세상을 떠났다 큰사진보기 ▲창덕궁 낙선재.김종성 하지만, 장애물이 있었다. 영친왕 부부의 환영은 받았지만 옛 황실 후손들의 환영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줄리아가 파란 눈의 소유자라는 것,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 등이 장애물로 작용했다. 황실 사람들은 이혼을 종용했다. 두 사람은 그 벽을 넘지 못했다. 늦어도 1977년부터 별거에 들어가고, 1982년 이혼하고 말았다. 줄리아는 전 남편을 그리워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의상실로 생계를 유지하고 복지활동도 하다가 1995년에야 하와이에 정착했다. 2000년에 다시 방문했지만, 전 남편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갔다. 그렇게 그리워하며 버티다가 지난 11월 26일 눈을 감은 것이다. 줄리아와 이구의 사촌인 이석이 부른 노래 속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라는 대목이 있다. 줄리아도 이구도 그런 포근한 사랑이 있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파를 견디지 못하다 헤어졌고, 미련을 품고 살다가 두 사람 다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줄리아 리 #이구 #영친왕 #이방자 추천25 댓글3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2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종성 (qqqkim2000) 내방 구독하기 트위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이 기자의 최신기사 부정축재 들통나 사라진 정치인의 문제적 과거 편집 김지현 (diediedie) 내방 구독하기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이 기자의 최신기사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구독하기 연재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다음글13화보수세력이 '1919년 건국'을 부정하는 까닭 현재글12화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부인, 그녀의 쓸쓸한 삶 이전글11화겨울만 되면 중대결단, 자칭 보수는 왜 그럴까 추천 연재 난 늙을 줄 몰랐다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전강수의 경세제민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제주 사름이 사는 법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SNS 인기콘텐츠 의대 증원 이유, 속내 드러낸 윤 대통령 발언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이충재 칼럼] '김건희 나라'의 아부꾼들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한강, 노벨상 수상 후 첫 공개행보 "6년간 책 3권 쓰는 일에 몰두"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망언도 이런 망언이..." 이재명, 김문수·김광동·박지향 파면 요구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부인, 그녀의 쓸쓸한 삶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14화유대인 눈치 보던 조상들, 트럼프가 피 이어받았나 13화보수세력이 '1919년 건국'을 부정하는 까닭 12화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부인, 그녀의 쓸쓸한 삶 11화겨울만 되면 중대결단, 자칭 보수는 왜 그럴까 10화이승만과 박근혜의 공통점, '국정원'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