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수영 MBC 예능PD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영광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파업자들이 가족과 함께 이야기한 것이 있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회의하면서 그냥 있는 자료로 패러디하는 것도 재밌지만, 기획해서 뭔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다 나온 아이디어였거든요. 아이들과 파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의외의 대답이 나올 수 있고 그런 게 재밌을 수 있겠다 싶어서 섭외해서 촬영했어요.
사실 파업하는 조합원 주위에 있는 사람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나요. 특히 자녀가 있는 조합원은 미래를 위해서 견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런데 저도 아이가 있지만, 아이와 파업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가 파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거든요. 함께 파업을 이야기하는 아이템을 올린 후 반응도 좋았죠.
같이 나갔던 PD, 기자들이 '김민식 선배나 다른 기자들도 그렇고 촬영하는 순간과 편집한 동영상이 자기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는 얘기를 해요. 찍었던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걸 보시는 시청자들뿐만이 아니고 제작한 조합원과 출연한 가족들에게도 하나의 선물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입니다."
- 예능 PD이시잖아요. 파업 후 업무 복귀한 뒤 예능국 분위기는 어떤가요?"지난 수요일(15일)부터 업무에 복귀했어요. 예능 프로그램 중에는 이미 촬영이 끝나 방송으로 나간 프로그램도 있고, 촬영을 더 해야 하거나 촬영한 게 없어서 방송 못 한 프로그램도 있죠. 파업기간 중 기다려준 프리랜서들도 있거든요. 그들과 다시 만난 게 반가웠죠. 같이 일했던 저희가 파업할 때 돈도 못 받고 기다려준 동료들에게 축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굉장히 기뻤어요.
그동안은 예능국이 비어 있어서 빈 발걸음을 했던 많은 사람이 축하해 주는 게 굉장히 벅찼고 프로그램을 다시 한다는 것도 좋았어요. 아직도 위에 그대로 자리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새로운 사장이 와서 그들이 물러날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하지만 다시 돌아온 기쁨을 만끽했어요. 예능도 바꿔 가야 할 게 많아요. 그걸 토론하는 자리도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안에서도 싸울 게 있으면 싸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 김장겸 사장 해임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노조가 방문진 앞에서 집회하고 있을 때 그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 자리에서 다 같이 환호를 하고 싶었지만, 복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서 예능 조합원들은 상암동에서 따로 총회를 하고 있었죠. 총회 도중 문자로 해임 소식을 들었어요. 다시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문제를 정하는 자리라서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어요. 기쁜 소식을 들었는데도 회의 중이라 그 기쁨을 나누지 못해 답답했는데, 총회 끝나자마자 서로 얼싸안고 축배를 들러 갔었어요."
- 만감이 교차했겠어요?"170일 파업 했을 때도 생각났고요. 권성민 PD가 유배 후 해고됐다가 법원에서 다시 손을 들어줘서 복직해서 같이 일하고 다시 파업하고 했던 것도 생각이 났어요. 예능도 떠난 사람이 많은데, 그들과 같이 파업했던 생각도 났고요. 몇 명은 상암동으로 불러서 '나갔지만 같이 싸운 거로 생각한다'고 말해줬어요.
사실 예능은 사람이 적은데다, 위에서도 돈 버는 프로그램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치적 이슈와 관련이 별로 없을 수도 있어서 예능 PD들은 유배 간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희 예능 PD들은 예능 같이 하는 동료들 뿐만이 아니고 기자, PD, 아나운서가 주위에서 없어져 가는 걸 많이 신경 못 쓰고 마음으로만 아파했었죠.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아픔도 이젠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들은 어땠을까란 감정도 들더라고요. 함께 파업을 시작해서 이기는 기쁨을 같이 느끼게 되어서 좋았어요."
- 나간 동료들은 뭐라고 해요?"정말 기뻐하고 있어요. 나간 동료들도 죄책감 같은 게 있었던 거 같아요. 바꾸고 싶어서 싸웠는데 바뀌지 못하고 더 나빠진 회사에서 자기 길을 선택해서 나간 거죠. 남아있는 우리에게 미안함 때문에 떳떳하게 나오지 못하겠다는 후배도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파업을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그 친구들이 떠난 고향을 생각했을 때 안타까움과 죄책감, 괴로움 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 이제는 많이 없어지고 달래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채널이나 제작사에서 일하더라도 같이 MBC에서 싸웠던 기억 그리고 MBC는 있는 사람이든 나온 사람이든 결국 좋은 MBC로 돌아간 걸 마음껏 기뻐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들은 '정말 축하드린다. 너무 미안하고 정말 잘 됐다. 우리 이제 같이 잘하자'는 얘기를 전해 왔어요."
-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면 어때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간섭도 심했다던데."드라마도 마찬가지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정치적인 영향을 덜 받고 피해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거 못지않게 예능 PD들에게 중요한 건 PD의 자율적인 창의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MBC 예능PD로서 자부심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5년간 그런 게 많이 없어졌어요.
프로그램 간섭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캐스팅이나 기획에 대한 간섭이에요. 예전에는 조금씩 더 현장에 있는 연출 PD 목소리를 더 높이려고 했다면 지금은 점점 윗사람들의 뜻이나 의중을 눈치 보고 살피게 되었어요. 심지어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이를테면 사장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연예인을 연말 특집 같은 데 출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던가 연출에도 간섭해요.
근데 솔직히 사장님이 연출에 간섭해 봤자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혀 차고 넘겼지만 이런 얘길 듣는다는 자체가 'MBC가 왜 이렇게 됐지'란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런 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거라고 해도 계속 듣고 위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끄럽지만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시청자들이 어떻게 볼까', '어떤 메시지나 어떤 걸 연출해서 표현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위에 본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장님에게 책 잡히진 않겠지?'란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MBC가 너무 망가졌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걸 심하게 부딪한 사람들이 이직도 생각했다고 생각하고요. 프로그램에 대해 하나하나 간섭 하는 게 아니라도 회사 전체를 봤을 때 바른말을 하고 옳은 말을 하던 사람들이, 또 게시판에 옳은 말을 썼다고 막내 PD가 해고를 당하는 모습이 저희도 참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 이직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제가 이직 생각을 한 것은 'MBC 전체가 변했다'고 생각했을 때와 되돌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을 때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MBC 왜 그러냐'는 말 들었을 때예요. MBC 뉴스를 저도 안 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지만 MBC 식구고, 제가 젊은 날 MBC를 통해 믿었던 가치를 걸고 살았기 때문에 회사가 변했을 때 다시 일어나 바꿀 수 있을지 힘도 안 난다고 생각했어요.
또 시청자들도 MBC 보는 걸 포기했다고 할 때는 과연 제가 여기서 하는 프로그램은 위에서 간섭받지 않고 있는지, 또 회의감 없이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를 5년동안 계속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나간 PD들은 다른 여러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회사를 옮긴다고 후배들이 얘기했을 때 잡지 못한 것 같아요. 그때 어떻게든 잡고 싶어서 했던 말은 '우리 옛날에 좋았잖아' 밖에 없었어요. 앞으로 좋게 바꿔 보자고 얘기할 자신감이 그때는 없었어요.
근데 이번에 파업하면서 다시 예능에 남은 선·후배 동료가 뭉치고 같이 정을 나누고 소속감을 나누었죠. 죽은 것 같았던 나무의 눈이, 봄이 와서 햇볕이 비치고 물을 주면 새잎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을 저 뿐만 아니라 모두 느꼈을 거 같아요. 사실 지금은 예능 PD가 밖에서 훨씬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이직의 기회나 유혹도 많아서 이직을 선택할 수 있지만, 이젠 동료가 이직을 고민한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한 걸 바꿀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지금은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해도 많이 괴로울 것 같지 않아요. 전에는 괴로웠어요. MBC가 부끄러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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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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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그만두는 후배에게 '옛날에 좋았잖아'란 말 밖에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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