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 '연차소진'의 의지를 보여준 청와대의 행보.
<중앙일보> 갈무리
하지만 곱씹어보면 환영만 할 일인가 싶다. 정책을 시행하는 의도는 옳다. 정부도 청와대가 먼저 실행하니까 산하기관·공공기관에서도 이런 정책을 도입하면서 정시퇴근하는 문화나 연차를 모두 소진하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그보다 자영업자가 더 많은 한국의 현실에서 정시퇴근이나 연차 소진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민간기업에서는 언감생심이다.
특히 1800만 원이란 돈은 보통 사람에게 1년 치 연봉에 달하는 금액이다.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일손이 부족해서, 사업장을 닫을 수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게 연차고 정시퇴근이다. 정부는 이런 걸 정책적으로 사용하라고 권장하고, 누군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1800만 원이 넘는 상여금을 받는다. 동시에 이런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상실감만 잔뜩 얻게 된다. 이래서 매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공시족' 숫자가 늘어나기만 하는 것 아닐까.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보면 결과물보다는 숫자부터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무형의 제안보다는 구체적인 숫자가 사람들에게도 쉽게 이해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이전 정부와는 다른 행보,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왔던 것에서 벗어나 '결과물이 있는' 숫자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것도 스토리가 있는 숫자 말이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면, 이런 수치가 나온다'는 얘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시행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연휴의 가운데를 임시공휴일로 만들었더니 얼마큼의 내수가 진작되고, 소비가 발생했는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수요일마다 정시퇴근 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정시퇴근 했더니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의 스토리를 포함해 정시퇴근한 장관의 수, 연차를 사용한 장관의 수를 알려주는 게 먼저 아닐까.
스토리는 숫자보다 중요하다. 정책보다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문화 조성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야 정부 소식을 접하는 대중은 정책에 신뢰를 더하게 되고, 그 정책이 민간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청와대 직원이 이렇게 바뀌었어요'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