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네팔에서 건너온 젊은 노동자 깨서브 스래스터(Keshav Shrestha)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그가 남긴 유서.
충북인뉴스
또 한 사람이 죽었다. 스물일곱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다. 지난 6일 새벽, 깨서브 스래스터(Keshav Shrestha)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네팔에 가서 잠시 치료를 받게 해 주거나 이직에 동의해 줄 것을 사측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청주네팔쉼터 번역)최근 이어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은 자살과 산재라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사회적 타살이고 역사의 퇴행이 낳은 결과다. 지난 5월 경북 군위에서 두 명의 네팔 이주노동자가 돼지농장에서 분뇨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지난 7월 8일에는 충남 천안시에 있는 한 농장에서 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가 퇴사를 거부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관련 기사 :
"직장 옮기고 싶은데..." 20대 네팔노동자의 '유서').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적폐'라는 단어가 이주노동자 정책에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하여 적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통하는 이명박 정권에서 쌓이기 시작했다.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난받던 외국인산업연수제 폐지와 함께 시작된 외국인고용허가제의 퇴행을 통해 '역사라는 것이 늘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는 명제를 이명박 정권은 확인시켜 주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이주노동자는 '죽어라' 일만 해라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며 친 자본, 반 노동자 정권임을 공공연하게 천명했던 이명박 정권은,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좌파의 집단 행동'이라고 규정짓기 일쑤였다. 특별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 2009년 7월 표준근로계약서상에 숙식비를 이주노동자가 부담할 경우 이를 표기하도록 외고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이는 과거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 당시 고용주 의무 제공이던 숙식비를 공제하도록 하여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 저하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산업연수보다 못하게 너덜너덜하게 만든 것은 '외국인 고용법 제9조 3항' 변경이었다. "근로계약은 1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한 부분을 "3년간의 취업기간 내에서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계약기간을 정할 수 있다"고 바꾼 부분이다.
근로기준법(제23조)에서 근로계약은 1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한 이유는 이렇다. 1년을 초과하는 장기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이로 인하여 인신구속 내지는 강제노동의 폐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의 퇴직의 자유를 보장하고, 한편으로는 매 1년마다 근로조건을 재검토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근로조건을 유지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퇴직의 자유 외에 고용안정과 고용보장을 위한 근로관계의 존속 보호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1년 근로계약 만기에 따라 사업장 변경을 희망하자, 고용주들의 편의를 위해 법을 변경해 버렸다. 말은 자율이라고 했지만, 입국 전 3년 근로계약을 제시하는 고용주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가 없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 근로계약=3년'이라는 인식은 이미 굳어져 버렸다.
고용주들이 장기근로계약을 핑계로 사업장 변경을 허락하지 않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피해 사례가 줄을 있고 있다.
이번에 자살한 네팔 이주노동자의 유서는 고용허가제 근로계약과 사업장 변경 문제점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말해주었다. 그들은 노예이기를 거부하며 죽음을 선택했다.
병역특례업체에 근무하는 대체복무요원들은 병역특례요원이라는 특성상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이러한 약점을 붙잡고 부당한 대우를 계속하는 사업체가 있다고 치자. 흔한 말로 '갑질' 논란이 일며 온 국민의 공분을 살 것이다. 이주노동자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현재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이 부도와 임금체불, 구타 등의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경우 등 아주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입국 때부터 3년 계약을 하고 입국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근무처 변경이 차단돼 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사업자가 다르고, 계약 내용과 실제 근로 조건이 다르고,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고용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
게다가 이주노동자가 장기계약에 따른 피해로 사업장 변경을 위해 근로감독관에게 민원을 제기해도 해결은 요원하다. 면접조정관이 중간에 끼여 이주노동자가 근로감독관을 직접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구조인데다, 사업장 변경은 고용센터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요식행위다. 외고법은 사업장 변경 횟수를 3+2(3년 이내에 3회, 근로계약 연장 이후 2회)로 제한하고 있다. 근로계약 종료 후 1월 이내에 사업장변경신청을 해야 하고, 사업장변경신청 후 3개월 이내에 근무처 변경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출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처 변경 횟수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고용주들로 하여금 이주노동자를 임의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마법 같은 조항이다. 그래서 인권침해의 단초가 된다.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체류 기간이 5년 이내로 정해져 있고, 잦은 이직은 퇴직금 수령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등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법률로 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이 제도가 정부 말처럼 고용안정과 고용보장을 위한 근로관계의 존속 보호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구직 유효 기간 설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주노동자들로 구직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구직 유효 기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성급하게 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브로커 농간으로 인한 피해만 양산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독소조항이다.
그런데 2011년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국적에 따른 차별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국인 고용시장 안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25조 3항과 4항' 관련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규정이 합헌이라고 선고했다. 이 선고는 이명박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현대판 노예제도인 산업연수제 이전으로 돌렸음을 공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는 이주노동자, 특별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가혹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추방과 단속 기조를 강화했고, 그 와중에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으나 뻔뻔했다.
합법 체류를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3년 장기 근로계약과 사업장 이전 제한 등으로 노동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다. 최근에는 성실근로자라는 미명으로 3년 이상 장기계약한 노동자를 노골적으로 우대하고 있다.
한편,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 강제추방이라는 날선 정책 앞에 노출돼 있다. 그런 가운데 결혼이주민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 담론의 범람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점차 제도적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쌓아놓은 적폐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