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주민들의 투쟁 모습.
관악사회복지
가난한 사람들은 병보다 병원이 더 무서웠습니다. 병이 깊어져서야 병원 문턱을 넘었지만 병원비를 내지 못해 시신을 저당 잡혀야 했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 시름시름 앓다 죽었습니다. 죽음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였습니다. 한을 이승에 두고 떠난 망자들은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음의 나라로 떠났지만 지옥 같은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가난한 가족끼리 지겹도록 싸웠고, 지겨운 가난을 견디다 못해 가출했습니다.
육성회비 독촉에 시달리다 학교를 그만둔 소년들은 신문을 배달하거나 구두를 닦거나 공장에 갔습니다. 핏발 선 눈빛의 소년들은 가난에 깨지지 않겠다며 소주 병나발을 불고 손목을 긋고 패싸움을 벌이다 깡패가 되거나 물건을 훔치다 소년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누이들은 일찌감치 공순이가 되거나 차장이 되어 집안 빚을 갚거나 쌀을 사다 날랐습니다. 그러다 가족이 쌓아 둔 빚에 팔려 작부가 되기도 했던 아, 가난한 누이들의 눈물로 얼룩진 전성시대였습니다.
달동네 사람들의 소원은 죽기 전에 달동네를 떠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봉천동과 신림동 달동네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달동네를 떠나지 않으려고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철거반이 쳐들어와 해머로 집을 부수고 때 묻은 양은 냄비를 걷어차면, 동네 아저씨들은 투석전을 벌이다 똥물을 던지며 저항했고 아줌마들은 웃통을 벗어 던진 채 울부짖었습니다.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변한 달동네, 집이 부서지고 화염이 솟으면서 시커먼 연기가 동네를 휘감았습니다.
"제발, 우리 집을 부수지 마세요!"검은 연기에 그을린 아이들이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짱돌과 똥물로는 판잣집을 지킬 수 없었으므로 부서진 집 더미에 움막을 짓고 솥단지를 걸어 수제비를 끓였습니다. 빈민들은 난민들보다 못했습니다. 난민들의 천막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빈민들의 움막은 철거 깡패들에 의해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달동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은 부서지지 않는 집이 되는 거였습니다.
빈민 현장에 왔다가 떠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