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도 페인트칠도 학부모가 했다, 노력동원이냐고?

[bulgom의 혁신교육 현장(11)] 학부모 손으로 학부모실 만든 서울 신도고

등록 2017.07.12 12:00수정 2017.07.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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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하기, 페인트 색상 정하기, 페인트칠하기, 가구 디자인하기, 가구 설치하기, 소품 사기, 벽 인테리어하기….'

'북유럽 카페 같은 사무실' 만든 사람들

 신도고 이혜영 행정실장이 학부모실 문을 열고 있다.
신도고 이혜영 행정실장이 학부모실 문을 열고 있다. 윤근혁

서울 은평구 통일로에 있는 신도고등학교. 교실 1/4 크기의 공간에서 위와 같은 작업이 펼쳐졌다. 지난 5월 11일부터 6월 12일까지다. 북유럽에나 있을 것 같은 카페 같은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서다.

새로 탄생한 이 사무실 문에 내걸린 파란색 문패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학부모실"

이 한 달간의 한판 작업에 떨쳐나선 이들은 다름 아닌 이 학교 학부모들. 10여 명의 어머니들이었다. 이들 학부모는 이 학교 학부모회가 공개 모집한 사무실 조성모임에 자진 응모했다.

"하다못해 못 하나라도 학부모들이 결정했어요. 이번 학부모실 만들기는 학부모가 9할의 역할을 하셨어요."


이 학교 이혜영 행정실장의 말이다.

 학교 구성원이 손잡고 함께 만든 학부모실.
학교 구성원이 손잡고 함께 만든 학부모실. 윤근혁

 학부모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신도고 학부모회

물론 이 학교 교직원들도 힘을 보탰다. 이 학교 행정실은 사무실 설치계획안을 만들었고, 시설주무관 3명은 전기 배선 공사를 맡았다. 학부모회 담당 교사들도 학부모와 아이디어 회의도 같이하고 일도 함께했다. 학부모들과 교직원들이 학부모실을 만들기 위해 재능기부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사무실 설치비로 500만 원을 지원했다. 이 학교만 돈을 준 것은 아니다. 올해 서울지역 초중고와 특수학교 180개교에 모두 같은 돈을 지원한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지역 1320개 초중고 가운데 학부모회 단독 사무실이 있는 곳은 316개교. 올해 180개교가 더 늘어나면 모두 500여 개가 된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구성 운영 등에 관한 조례'가 시행되어 학부모회가 공식기구가 되면서 본격화된 일이다.

신도고는 왜 학부모들에게 맡겼을까?

그런데 상당수의 학교는 사무실 조성 공사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게 관례다. 학교에서 내놓은 의견에 맞추기는 하지만 설계와 시공은 업체 몫이라는 것이다.

 학부모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 학부모들이 페인트칠 준비를 하고 있다.
학부모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 학부모들이 페인트칠 준비를 하고 있다. 신도고 학부모회

하지만 신도고의 이번 작업과정은 달랐다. 업체에게 돈 주고 맡겼으면 편했을 텐데, 이 학교는 왜 그랬을까?

송의열 교장은 "학부모님들이 쓸 공간이니까 학부모회가 스스로 논의하고 자율로 참여해서 사무실을 만드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막상 학부모들이 사무실 만들기를 주도하다 보니 사무실의 주인으로서 자부심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행정실장도 "학부모실 새로 만들기도 자연스럽게 올해 학부모회 활동이 된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재능기부를 했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아 지금과 같은 멋진 사무실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신도고에서 이 학부모실을 만들면서 쓴 돈은 모두 549만6800원. 교육청 지원금에다가 싱크대와 냉장고 사는 돈 49만6800원은 학교에서 보탰다. 이 학교가 만든 '예산집행 내역서'를 보니 인건비 항목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학교가 '을'의 위치에 있는 학부모, 그것도 '학생들의 어머니'들을 이른바 '노력동원'한 것은 아닐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손성화 학부모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부모실이 새로 생긴다니까 공지사항에서 이런 내용을 본 학부모들이 무척 좋아했죠. 자발적으로 사무실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힘들긴 힘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학부모들이 사무실을 직접 만든 거니까 우리 것이란 마음이 더 들어요."

송 회장은 "이제 학교 밖 카페에서 하던 학부모 모임을 학교 안 사무실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맘껏 열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우리들이 만들었으니까 우리 것이란 마음이..."

 학부모가 기부한 학부모실 소품들.
학부모가 기부한 학부모실 소품들.윤근혁

 학부모실 벽에 걸려 있는 학부모회 활동 사진.
학부모실 벽에 걸려 있는 학부모회 활동 사진. 윤근혁

오는 7월 13일 정식으로 문을 여는 이 학교 학부모실은 앞으로 학부모회 회의, 학부모 동아리 활동, 학부모 문화강좌, 학부모 독서토론, 학부모 취미교실, 학부모 쉼터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치맛바람'의 온상이 되지는 않을까? '배배 꼬인 심보'를 가진 기자의 이런 질문에 송 회장은 다음처럼 말하면서 웃었다.

"요새 그런 치맛바람이 어디 있어요? 학부모들이 학교에 돈 내고 그런 것 없어요. 학부모는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이죠. 그래야 학교랑 소통하게 되어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고요."
덧붙이는 글 <지금서울교육>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신도고 #학부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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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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