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7월,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서 조아니따 필리핀 이주여성이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성호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당사자들이 나선 이유 열아홉 결혼이주여성이 남긴 편지에 많은 이들이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복사판 같은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세상은 결혼이주여성의 죽음에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결혼이주여성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0년 7월 20일,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을 추모하는 기자회견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렸다. 당시 스무 살이던 탓티황옥은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을 숨기고 결혼한 남편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 이 사건이 터지고 온 국민이 공분을 일으키자, 정부는 범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국제결혼 건전화방안 마련을 위해 국제결혼 중개 시 당사자 간 건강 상태와 범죄 경력 여부 등과 같은 신상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했다. 더불어 혼인비자 발급 업무를 강화하고 불법 국제결혼중개 근절 방안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탓티황옥 사망 사건은 폭력이 일상이고 살해까지 당하는 현실에 대해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발언하게 만들었다. 추모제에 참석한 결혼이주여성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가정폭력이 일상인 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나도 그 베트남 이주여성일 수 있습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이처럼 이주여성들은 탓티황옥 사건 이후, 공개적인 자리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리라"고 다짐하며 한국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주여성들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빌려 끊임없이 일어나는 처참한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변화를 요구했다. 더불어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한국 사회가 함께 추모하길 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주여성들은 매해 살해당하고 있고, 이주여성 추모제는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주여성의 울부짖음은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방송 카메라가 있는 자리에까지 나와서 그런 말을 하겠느냐'는 소리는 빈말이 아니었다. 첫 추모제가 열린 지 7년이나 지났지만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추모 기자회견에 섰던 그녀, 죽음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6월 2일, 탓티황옥을 추모하며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씨(31)가 시아버지 김아무개씨(83)에게 살해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파트에서 며느리 A씨의 목과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한다. A씨는 남편 김아무개씨(48)와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두고 있는데, 사고 당시에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며느리와 아들이 용돈을 주지 않고 구박했다며 '우발적인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후, 경찰과 언론은 A씨가 시어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내용과 함께 "아들 부부가 용돈을 주지 않았고, 자주 구박했다"는 김씨의 설명을 전했다. 검찰 역시 김씨가 A씨와 문화, 언어적인 차이로 상당 기간 갈등의 골을 키워온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이나 언론은 사망한 A씨가 겪었을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시아버지를 두둔하고, 죽음의 원인을 마치 A씨에게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비난하는 형국이다. 7년 전에 "나도 그 베트남 이주여성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던 자리에 왜 A씨가 있었는지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결국 죽은 사람만 억울하고 바보가 되는 셈이다. 그런 형편을 알고 있기에 이주여성들은 7년 전에 이미 "한국 땅에서 또 다른 탓티황옥이 생기지 않도록 남아 있는 우리가 지켜내겠다"고 울부짖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