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자기야, 베개에 이상한 거 묻어있어!" 아내의 놀란 목소리에 잠을 깨니, 베갯잇에 누런 얼룩이 남아 있었다. 색깔은 코 같기도 한데, 왼쪽 귀가 먹먹하게 잘 안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귀에서 나온 고름이 분명했다. 나들이 가려던 계획을 접고, 주말 진료를 보는 이비인후과를 급히 찾았다. 귓속을 찬찬히 보던 의사가 혀를 찼다. "귀 청소 자주 하시죠? 외이도염이 아주 심하게 왔어요. 면봉 쓰시면 안 돼요." 며칠 전, 귓속이 간질간질해서 면봉으로 귀를 세게 후볐더니 금방 귓병에 걸리고 말았다. 독한 약을 받아 들고 병원 건물을 나서는데 출근할 걱정이 앞섰다. 염증이 난 자리에서 진물이 흘러나와, 귀마개를 착용한 듯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사진보기 ▲귀에 넣는 약까지 받아왔다.이준수 '전담도 없이, 5교시를 내리 해야 하는데 수업을 어찌 하나?' 다음 날 줄줄 흐르는 고름은 멈췄지만, 여전히 귀안은 솜뭉치를 박아 넣은 듯 답답했다. 소염 진통제와 항생제, 제산제가 든 약봉지를 입안에 털어 넣고 교실로 올라갔다. 수업을 시작하기 앞서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당분간 선생님 왼쪽 귀가 잘 안 들립니다. 부를 때 잘 못 들을 수 있어요." 1교시는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이야기를 간추려야 하는 국어시간. 자연히 오가는 문답이 많았는데 부반장 상윤이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선생님 자세가 특이하다고 했다. 왼쪽 귀가 안 들리니 나도 모르게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기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과 눈을 일일이 마주치며 듣다 보니 상윤이에게는 그 장면이 낯설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아침의 불안한 마음도 잠시 아이들은 수업을 잘 따라왔다. 이어지는 수학 시간, 바둑돌을 똑같은 개수로 묶으며 나눗셈의 기본 원리를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상영이가 문제를 풀다가 몰라서 수학익힘책을 들고 왔길래,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줬다. 대답 소리가 희미해서 머리를 연신 상영이 쪽으로 가까이 대었다. "선생님, 너무 붙지 마세요. 머리 박을 것 같아요." 상영이는 대답을 그렇게 했지만 두어 번 머리를 살짝 부딪히기도 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눈치였다. 상영이를 보고 건율이와 서진이도 따라 했다. 이윽고 점심시간, 급식 차례를 기다리며 아이들 뒤편에 서 있는데 원건이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선생님 손은 제 손보다 더 따듯하네요." 그러자 지환이랑 건율이도 담임의 거친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생전에 애교 안 부리는 사내 녀석들이 곰살맞게 구니 기분이 묘했다. 귀가 안 들려서 평소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몸을 기울였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것을 관심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어지간히 떠들어도 담임이 모른 채 넘어가 주니 신났던 탓도 있었으리라. 밥 먹고 와서 교실 의자에 앉으니 이번에는 성욱이랑 산하가 교실 뒤편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두 녀석이 말하길 애들이랑 팽이 시합을 하는데 그냥 하면 흥이 안 나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우승 상품으로 사탕 하나만 내주십사 부탁을 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까 수업 잘 들어준 꼬마들이 예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건넸다. 빨간 사탕 하나에 신이 난 머슴애들은 미친 듯이 "고~ 슛!"을 외치며 팽이를 돌렸다. 남학생들은 사탕 하나 먹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잘한다!", "KO!" 추임새를 넣어주니 그야말로 팽이 시합장 주변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이십 분쯤 지났을까 5교시를 준비하려는데 우승 상품으로 사탕을 거머쥔 산하가 기뻐서 방방 뛰며 말했다. "선생님이 매일 오늘 같으면 좋겠다." "나도 나도. 쌤~ 내일 또 팽이 해요." 얼떨떨했다. 외이도염 진단을 받았을 때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문득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예전에 두 귀가 잘 들린다고 건성으로 아이들 말을 들었을 것이다. 또 애들이 조금 심하게 장난치면 시끄럽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고, 채점을 하며 장난스럽게 머리를 부딪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자 양쪽 귀가 온전해야 좋은 것인지 한 귀로 정성스레 듣는 것이 좋은 것인지 헷갈렸다. 올해로 교직 9년 차,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그간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나 보다. 귓병이 괜히 온 게 아니다. 애들한테 잘 하라는 몸의 경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매너리즘 #경청 #귓병 추천12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이준수 (leejs12345) 내방 구독하기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게임 좋아하는 아이들, 이건 특히 열광하는데요 구독하기 연재 로또교실 다음글27화카네이션이 꽂혀야 하는 자리 현재글26화귓병 걸린 담임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 이전글25화'성과급' 입금된 날, 어색해지는 교무실 풍경 추천 연재 전강수의 경세제민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난 늙을 줄 몰랐다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사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날 서점은 눈물바다가 됐다 최병성 리포트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SNS 인기콘텐츠 [이충재 칼럼] '김건희 나라'의 아부꾼들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용산 '친오빠 해명'에 야권 "친오빠면 더 치명적 국정농단"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귓병 걸린 담임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28화속상한 'B급 선생'... 교원성과급은 '분열'이다 27화카네이션이 꽂혀야 하는 자리 26화귓병 걸린 담임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 25화'성과급' 입금된 날, 어색해지는 교무실 풍경 24화'장애인 놀림' 사건, 뜻밖의 결말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