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그린 달빛> 속의 홍경래(정해균 분).
KBS
홍길동과 똑같은 남양 홍씨로서 홍길동과 같은 길을 밟은 인물이 약 300년 뒤의 홍경래다. 배우 박보검으로 인해 인기를 많이 끌었던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나온 홍라온(김유정 분)의 아버지가 바로 홍경래다. 홍경래한테 홍라온이란 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허구다.
오늘날 발행된 많은 책에는 이른바 '홍경래의 난'이 1811년 발생했다고 쓰여 있지만, <순조실록>에 따르면 이것은 음력으로 순조 11년 12월 18일, 양력으로 1812년 1월 31일 시작된 사건이다.
1812년이면 개혁군주 정조가 사망한 지 12년 뒤다. 정조의 죽음으로 영조·정조 2대에 걸친 개혁정치는 수포로 돌아갔다. 동시에 경주 김씨,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같은 몇몇 가문이 돌아가면서 독재정치를 하고 세도(勢道, 세력 과시에 의한 정치)를 부리는 양상이 나타났다. 정조가 나이 어린 순조를 두고 떠난 데에다가 어린 왕의 정권을 지켜줄 왕실 세력이 부재한 탓에 외척들이 권력을 독식한 결과였다.
왕실도 하나의 가문이지만, 왕실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한다. 하지만, 왕실이 아닌 가문이 정권을 차지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래도 자기 가문 위주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 전체의 이익보다는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세도 가문들의 세도정치 하에서 민란이 급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홍경래, 실패하긴 했지만...이런 시점에서 홍경래는 평안도 부자와 선비들의 지원을 받아 군사행동을 일으켰다. 그의 부대는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를 점령했다. 만약 이 부대가 작전계획을 놓고 내분을 일으키며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빨리 남하작전을 전개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홍경래는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홍길동처럼 실패하긴 했지만, 홍경래 역시 후세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기억을 새겼다. 특히 평안도 사람들한테 그런 영향을 줬다. 평북 출신 시인 김소월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 어린 시절 그는 숙모로부터 홍경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로 인해 나온 시가 <물마름>이다. 스물네 살 때인 1925년 <조선문단>에 기고한 작품이다.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에참아 다 받지 못할 한과 모욕을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인력의 다함에서 스러진 줄을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도독(荼毒) 된 삼천리에 북을 울리며정의의 기를 들던 그 사람이여도독은 씀바귀 독이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심한 해독이나 부조리를 뜻한다. 그런 해독이 잔뜩 만연한 삼천리 조선왕조를 뜯어고칠 목적으로 홍경래가 북을 울리고 정의의 기를 들었다고 김소월은 노래했다. 홍경래의 혁명 정신이 100년 뒤 김소월의 여린 가슴에도 스며들었던 것이다.
홍길동·홍경래 두 남양 홍씨는 왕조가 위기의 기로에 섰을 때 서민 대중과 진보의 편에 서서 궐기했다. 그들은 결코 보수의 편에 서서 부귀영화를 추구하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보수의 기'가 아니라 '정의의 기'를 들었고, 자기 대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세상을 좀 더 정의롭게 진보시키는 데 기여했다.
홍길동·홍경래와 본관이 같은 홍준표. 나라가 위기의 기로에 섰을 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홍준표는 두 홍씨와 비슷하다. 두 홍씨처럼 창검을 들지 않고 그 대신 마이크를 들기는 했지만, 위기의 시대에 뭔가를 하고자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조선 시대 두 홍씨와 다른 길 걷는 홍준표하지만 홍준표는 두 홍씨와는 달리 무너져가는 보수의 편에 서 있다. 국민 대다수의 요구로 대한민국 정치체제가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이때, 홍준표는 죽어가는 과거 체제에 어떻게든 호흡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보수의 기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2017년처럼 대한민국이 위기의 기로에 섰던 1960년 4월 혁명 때,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명령하고 개헌 카드를 내세워 혁명 정국을 호도하려 했던 홍진기 내무장관처럼, 홍준표도 무너져가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3주기인 지난 16일, 추모식에 불참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세월호 가지고 3년을 해 먹었으면 됐지"라고 답변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세상의 변화를 무시하고 보수의 깃발을 마냥 꽉 붙들고 있다.
홍길동·홍경래는 자기 대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길게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결국 그들이 지향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홍준표는 자기 대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10월 이후의 상황 전개로 볼 때 그렇다. 대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자기 대에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그는 앞선 두 홍씨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홍준표는 절대로 홍길동·홍경래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홍준표는 자기 대에는 물론이고, 길게 볼 때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대한민국 보수는 훗날의 역사에서도 안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들이 역사를 퇴보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의 선두를 자처한 홍준표는 절대로 홍길동·홍경래 같은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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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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