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카레가 나온 날치킨 카레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에 하나다. 많은 아이들은 치킨 카레 외에는 아무 것도 담지 않았다.
서부원
당장 점심시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할 테지만,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을 교육과정 속에서 확보해주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안이다. 국영수는 정규수업에다 방과 후 수업까지 매일 한두 시간씩 배정돼 있지만, 체육은 일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뿐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손보지 않고서는,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체육수업시간을 벌충하는 시간일 수밖에 없다.
국영수가 대학입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이라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다 그런 건 아니다. '수포자(수학 공부를 포기한 고등학생)'가 학교마다 넘쳐나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고, 영어와 국어도 수학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게 현실인데, 교육과정은 그런 아이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수업시간 엎드려 자는 것보다 차라리 운동장에서 뛰어놀도록 하는 게 훨씬 교육적일 텐데 말이다.
실로 아이들의 밥 먹는 속도는 엄청났다. 숟가락을 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떴다. 하나같이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식사를 했고, 마주앉은 친구들과 대화도 거의 없었다. 밥을 '먹는다'는 말보다 차라리 '마신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듯싶었다. 그저 체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듯한 아이들의 식성이 그것이다. 그들의 식판 위에 받아든 메뉴는 나와는 아예 딴판이었다. 같은 날 같은 배식구에서 나온 음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는 몇몇 유별난 아이들의 식성이라며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다섯 개의 식판 구멍은 밥과 국, 반찬 세 가지를 위한 구성이다.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해 매일 식단이 달라지지만, 아이들의 식판에 급식소에서 준비한 '1식 3찬'이 그대로 오르는 날은 거의 없다.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와 밥만 받아오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마저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아이들이 많다.
음식을 아예 받지 않은 아이든, 한두 숟가락 먹다 말고 잔반통에 통째로 버리는 아이든, 이유를 물어보면 '맛이 없어서'라는 한결같은 대답이 따라온다. 그들에게 고기 외에는 전부 '먹기 힘든' 음식이다. 나물은 말할 것도 없고, 콩나물국이나 시래기된장국 같은 건 아예 손도 안 댄다. 생선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김치조차 못 먹는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금요일마다 급식 외면하는 아이들한번은 한 아이의 '휑한' 식판을 보며 나물 무침을 슬쩍 건네며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말을 건넸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나물을 먹으면) 토가 나올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지금껏 나물 요리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그는, 친구들 중에 육개장에 들어있는 채소를 일일이 건져낸 후 먹는 경우도 많다면서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리 고기라도 맛이 없으면 요즘 아이들에게 배척당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튀기거나, 달달한 소스를 덧입힌 요리가 많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많은 양의 아까운 음식이 그대로 버려지게 된다면서 영양교사도 고충을 토로한다. 다 큰 고등학생들의 입맛을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급식 지도를 통해 잔반을 줄이는 게 상책이라는 하소연이다.
'맛이 없는' 음식을 못 견뎌하는 아이들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 광주광역시의 경우, 매주 금요일을 '채식의 날'로 지정 운영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이들의 편향된 식습관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에게 금요일은 '점심이 없는 날'로 여겨진다. 젊은 교사들조차 금요일 점심만큼은 학교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다른 날도 없진 않지만, 금요일의 경우에는 아예 급식소에 오지 않고 곧장 구내매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많다. 급식소로부터 매일 파악한 학급별 급식자 현황을 받아 개별 지도를 하는 등 고육지책을 쓰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되레 친구에게 학생증을 맡겨 스캐닝 하도록 부탁하는 등의 편법만 독버섯처럼 생겨나고 있다.
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과연 학교는 그 역할의 몇 퍼센트를 감당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상담을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담임선생님만 믿겠다'고 말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그건 부모로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사라도 그 '몫'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걸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점심시간 급식소를 나오며 자문해 본다. 식습관 하나 바로잡는 것도 버거워하며 포기하는 마당에 아이들 앞에서 대체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걸까. 하긴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조차 흔쾌히 내어주지 못해 밥을 '마시게' 하면서, 무슨 얼어 죽을 교육인가 싶기도 하다. 학교도, 학부모도 대학입시를 핑계 삼지만, 언제까지 그것이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있을지 그저 착잡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급식소에서의 한 달이 준 나름의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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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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