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 기한이 끝났을 때, 고용허가제로 재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안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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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 기한이 끝났을 때, 고용허가제로 재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안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귀국했다. 불법체류 기간을 포함해서 5년을 한국에 있다 귀국한 하담은 귀국하자마자 결혼했다. 그리고 고용허가제로 재입국하여 4년 10개월을 일하고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했다. 15년 동안 대전에서 가장 오랜 6년을 보냈고, 이후 당진, 천안, 안산, 안성, 용인 참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입국했을 때는 입사 후 두 달 만에 월급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는 인도네시아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월급을 전액 적립했다가 귀국할 때 준다면서 매달 식비만을 지급했다. 두 달 동안 20만 원을 받았던 하담은 이미 한국생활을 많이 했던 터라 다른 회사와 비교했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산업연수생 때도 그런 대우를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이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담은 미등록자가 되었다. 결국 세 번째 입국 기간 동안 대부분은 체류자격 없이 숨죽이며 일을 해야 했다.
그동안 동료가 눈앞에서 죽는 모습도 봤고, 흰자위가 검은 눈동자를 덮어 눈앞이 침침해지는 익상편 수술을 받았고, 머리에 실핏줄이 터지는 지주막하출혈, 뇌동맥류 치료도 받았다. 귀국을 1년도 안 남기고 죽을 수도 있는 일들을 겪은 셈이었다. 15년 동안 죽으라고 일만 했던 하담은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귀국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형제들이 위급하다고 전했다. 그 소식을 들은 쌍둥이 동생은 올해 초 귀국했다. 하담도 동생과 같이 귀국하려 했지만, 뇌동맥류 치료 문제로 귀국을 늦췄다. 치료받는 동안 3년 넘게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금을 받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했다. 하담은 출국 바로 전날 퇴직금 문제를 해결했다. 비록 원하는 금액을 다 받지 못했지만, 병원비 때문에 동료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
먼저 귀국한 형제들은 소를 기르고, 파는 일을 한다. 하담 역시 귀국하면 소를 키울 생각이다. 먼저 시작한 형제들에게 배우며 하겠다는 각오다. 하담은 말수가 적지만 계획적이고 조심성 있는 사람이다. 형제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고향 물정을 익히고 좀 더 돈을 모으면 새우 양식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귀국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네 형제가 한국에 있을 때 휴일이면 만나서 술을 마셨던 것처럼, 제일 먼저 함께 '소주나 한잔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슬림이 술 마시면 되냐는 질문에는 씽긋 웃었다. 그게 대수이겠냐는 표정이다.
"가족끼린데요, 뭘. 눈치 보이면 마을 밖에서 마시면 되고요."하담은 뇌동맥류 수술 때문에 입원하기 전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술을 마시던 습관이 있었다.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작년 봄, 동료가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본 후부터였다. 동료가 눈을 감았던 현장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루기 힘들었을 때였다. 두통이 심했고, 구역질도 느끼곤 했지만 피로가 겹쳐서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원인은 지주막하출혈이었다. 다행히 치료는 생각보다 잘 끝났다. 출국을 앞두고 술을 끊고도 잠을 잘 자서 그런지 혈색도 많이 좋아졌다. 몸무게도 평소보다 5킬로 이상 늘었다.
그런 그가 농담이지만 '형제들과 함께 소주나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건강에 자신이 생겼나 보다. 병든 어머니 때문에 귀국을 서두른 하담은 꽃피는 4월을 앞두고 파란만장했던 한국생활을 마무리했다. 형제들과 합하면 46년, 그 사연을 다 묶으면 천일야화로도 이야기보따리가 모자랄지 모른다. 3월 29일, 하담은 달콤한 이야기를 풀 생각에 싱글거리며 자카르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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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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