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 스파이시토마토크림 링귀네.
강윤희
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1년여간 사귄 여자친구 애니(다이안 키튼 분)와 헤어져 고독, 비참함, 고통, 불행뿐인 남자 앨비(우디 앨런 분)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왜 둘은 헤어져야 했을까. 20세기 가장 위대한 로맨스 영화로 꼽히는 <애니 홀>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앨비의 어린 시절과 옛 연애를 훑는다.
우주가 팽창할까 걱정하는 동시에 이미 여자를 알던, 놀이공원 범퍼카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6살 앨비의 어린시절에 문제가 있을까?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는 불안한 꼬마였고, 여전히 불안한 그이지만 그것이 실패한 연애의 답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실패한 두 번의 지난 결혼에 실마리가 있을까? 언제나 시니컬한 유대인 뉴요커 앨비, 하지만 이런 그의 특징 때문에 그의 지난 연애가, 이번 연애도 실패로 끝났는지 또한 명확하지 않다. 그 자리엔 의례 헤어지는 연인들의 어긋남이 있을 뿐.
"Hi, Hi, Hi" 수줍음을 담은 어색한 인사를 반복적으로 건네던 가수 지망생 애니와 이를 바라보던 스탭드업 코미디언이자 희극작가 앨비, 둘의 시작도 여느 커플처럼 풋풋했다. 서로에게 끌리지만, 아니 끌려서 모든 게 어색한 처음을 지나며 둘은 오픈카를 탄 채 도로를 달리고 와인을 나눠 마시고 대화를 하고 강변을 따라 걸으며 키스를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앨비는 그 유명한 대사로 사랑을 읊는다.
"Love is too weak a word for what I feel - I luuurve you, you know, I loave you, I luff you, two F's, yes."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부족해서, 사아아아아랑해, 솩랑해 뭐라도 강하게 말하고 싶은, 벅찬 마음이 밀려드는 그 순간. 둘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논쟁을 벌이고 섹스를 하고, 섹스에 실패하기도 하며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들의 과정을 겪는다. 이 일련의 장면들은 별 큰일이 아닌 듯 지나가지만 영화의 엔딩에서, 말 그대로 '필름처럼 지나가며' 리플레이 되는데 이때 관객들은 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이 얼마나 가슴시리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 뻔한 충격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함께 랍스터를 요리하는 장면, 앨비의 부엌에 애니가 살아있는 랍스터를 들여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은 연애에서 가장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갑각류를 끔찍하게 여겨 혼자라면 절대 살 생각조차 못하는 살아있는 랍스터가 내 주방을 기어다니는 일. 원래의 나라면 만질 엄두도 안하는 랍스터를 만지게 되는 것. 나와 다른 용기를 지닌 애인이 웃으며 종용하면 소리지르고 욕하면서도 그래도 한 번은 해볼 수 있는 일이 되는 것. 그것은 내 삶을 뒤바꾸진 않을지언정 그렇게 함께해나가며 내 삶의 영역을 넓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