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역적>.
MBC
지난 1월 30일 처음 방송된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은 지금까지의 홍길동 사극과는 크게 다르다. 소설가 허균이 만든 의적 홍길동의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역적 혹은 혁명가 홍길동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또 홍길동을 정승의 서얼(서자+얼자)이 아니라 노비 남성의 아들로 설정한 것도 색달랐다. 서자는 일반인(양인) 첩이 낳은 아들이고 얼자는 노비 첩이 낳은 아들이다.
<역적> 1회 및 2회에서는 어린 홍길동이 사회 부조리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양반 부잣집 노비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하는 차별과 학대를 지켜보며 저항 의식을 키워가는 소년 홍길동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홍길동의 어머니·아버지가 부잣집 노비였다는 설정은 역사 기록과는 상반된다. 1666년 홍만종이 편찬한 수행자들의 전기인 <해동이적>에 따르면, 홍길동은 양반 아버지를 둔 정승 홍일동의 이복동생이었다. 홍일동은 정실부인의 자식이고 길동은 첩의 자식이었다. 홍길동의 아버지는 <홍길동전>에서처럼 양반 고위층이었던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 때 나온 족보인 <만성대동보>의 남양 홍씨 편에서도 홍길동은 정3품 고위층 남성의 서얼이었다.
홍길동의 신분에 관한 드라마 <역적>의 설정은 역사기록과는 상반되지만, 홍길동을 의적이 아니라 혁명가 혹은 역적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역사기록과 일치한다. 홍길동의 반란을 다룬 <연산군일기>의 여러 기록을 종합하면, 홍길동은 부대를 이끌고 관청을 습격하며 조선왕조에 대항한 혁명가였다. 허균의 소설은 그런 <연산군일기>의 홍길동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국가권력을 훔치는 일도 '강도'로 표현된 옛날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의적 홍길동의 한자 이름은 길할 '길'과 아이 '동'을 써서 洪吉童이고, <연산군일기>에 나오는 혁명가 홍길동의 한자 이름은 길할 '길'에 같을 '동'을 써서 洪吉同이다. 이렇게 한자 이름이 다른데도 소설 속의 홍길동이 혁명가 홍길동을 모델로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존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쓰면서 한자를 똑같이 사용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 점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홍길동전>의 홍길동과 <연산군일기>의 홍길동이 동일인임을 보여주는 자료가 많다는 점이다.
두 기록 속의 홍길동은 같은 시대 사람이다. 둘 다 똑같이 15세기 및 16세기 사람이다. 또 <해동이적>의 저자이자 17세기 사람인 홍만종은 실존인물 홍길동과 <홍길동전>의 홍길동을 연관지어 생각했다. 다만, 소설 속 홍길동이 도술을 부리는 장면에 대해서는 홍만종도 부정적 시각을 표출했다.
<연산군일기>에는 홍길동을 강도로 표현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홍길동을 혁명가로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뿐만 아니라 왕실의 소유물인 국가권력을 훔치는 일도 강도로 표현되었다.
'강도'가 그런 뜻으로도 쓰였다는 점은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나타난다. 1911년 신민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자신이 국사(國事) 강도범이라 감옥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노라고 <백범일지>에서 술회했다. 홍길동을 강도로 표현한 것은 그를 깎아내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김구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정치범이나 혁명가를 강도로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방 유지들의 지지까지 받은 특이한 혁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