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306보충대에서 입영장정들이 공개전산부대분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옹기종기 모여 줄을 서는 장정들. 얼마 후면 신교대 가는 버스가 도착합니다. 각자 배속된 곳으로 떠납니다. 사단별로 나눠서 줄을 선 장정들은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자대에 도착하면 연락하거나, 휴가 나오면 꼭 보자는 말들이 나왔죠. 이런 저희에게 어이없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어느 장교가 이등병과 함께 저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그 대위는 조용히 저희를 보고 대강대강 명부를 체크했습니다. 처음 보는 '반짝이는 은빛 계급장'. 장교를 처음 본 저희들은 바싹 긴장했습니다. 군 계급을 모르더라도 '우리보다 엄청 높은 사람'임은 누구나 알 수 있죠.
대위는 한참 체크를 하고 어딘가로 가버렸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지요. 대위와 함께 따라온 이등병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죠. 그 이등병은 대단히 오만하게 저희를 훑어봤습니다. 고작 작대기 1개인 이등병이지만, 계급장도 없던 우리들에게는 그마저도 대단해보였습니다.
그 이등병은 저희에게 버스에 타라 했죠. 강압적인 태도와 반말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군대에 들어온 지 기껏해야 4일 차인 장정들에게 이등병은 '너무나도 높은 작대기'로 보이니까요.
버스에 장정들이 모두 올라타자, 이번에는 그 이등병은 되도 않는 협박을 했습니다. 갑자기 올라와서 군홧발로 버스 바닥을 쿵쿵 내리치며 이렇게 외쳤죠.
"야! 니들! 내 말을 안 들으면 얼차려를 줄 거야! 알았어?!"간부라고 할지라도 직속병사가 아니면 얼차려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병사끼리는 원칙적으로 얼차려가 금지돼 있습니다. 순진한 장정들을 상대로 한 '갑질 사기극'이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헛소리입니다.
그 이등병은 되도 않는 협박을 한 뒤, 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등바리'주제에 순진한 장정들에게 '갑질'을 한 것이 뿌듯했던 걸까요? 그러더니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몇 분 뒤 그 이등병은 다시 버스에 돌아왔습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장정들에게 '담배 있냐?'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담배를 몰래 소지한 사람이 있기는 했죠. 하지만 그걸 말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법.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등병은 저열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어차피 신교대가서 뺏기나, 나한테 뺏기나, 똑같아!"순간적으로 군인인지, 양아치인지 구분이 안 갔습니다. 아무도 대꾸가 없자, 그 이등병은 투덜대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이런 횡포에 아무도 항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덩치가 좋은 장정들도 마찬가지죠. 부당한 대우에 항의를 할 수가 없는 잘못된 구조이기 때문이죠.
그 한심한 이등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계급이 깡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