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메시지 남기는 예비역지난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이희훈
나는 지금 노동조합 상근자로 일한다. 99%가 남성 조합원들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에서도 위와 같은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그에 대한 나의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적인 대화에 여성혐오적 욕설과 비난이 오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합원들 간의 술자리 이후에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르는 일도 분명히 있다.
물론 나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 모르게 말이다. 추측컨대 민주노총에 소속된 단위노동조합 간부들 중에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물론 아는 사람만 알도록 말이다. 실체를 드러내는 사례를 몇 가지로 분류해보겠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한창인 요즘 같은 때 가장 흔한 풍경은 "박근혜 XX년", "최순실 미친년", "여편네들이 다 말아 먹네", "암탉이 설쳐대니까 나라꼴이 이 모양이지", "비아그라는 X 빤다고 샀겠나" 등등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물론 회의 자리나 집회 발언 등에서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40~50대 남성 조합원들이 끼리끼리 얘기하는 중에 종종 들려오는 말들이다. 노동조합 공식석상이나 발언 중에도 간혹 그런 표현들이 등장한다. "여성의 치마와 발언은 짧아야 좋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아봐서 저렇다" 등등...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성차별과 여성혐오에서 나오는 다양한 욕설과 표현들.
상근하는 여성 간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태도는 일단 '경리 아가씨'이다. 비혼 여성이면 더욱 심하고, 웬만한 기혼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접하게 되는 조합원이나 상담 오는 비조합원들은 오히려 조심하는 경향이 있지만, 노조활동 구력이 있는 사람들이 잘못을 더 많이 저지르곤 한다.
술에 취한 경우에는 매사가 정말 위태롭다. 본인들 얘기로는 하나같이 "고생하는데 안쓰러워서",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려는 것"이 그 동기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적인 성희롱은 둘째로 치고, 구체적인 행위로는 동의 없이 손을 잡거나, 포옹을 시도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여성 간부라는 권력관계에 있고 평소에 잘 아는 사이여서 본인 또는 주변에 의해 중간에 제지당해 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순식간에 저질러지는 상황이 더 많고 대부분의 가해자는 그 자체가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사후처리는 가벼운 경고로 끝나거나, 대다수는 그조차도 없이 그냥 넘어간다.
카톡으로 야동 보내주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야동이나 사진, 음담패설 등을 주로 카톡으로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잘 알고 친한 남성들 사이에서 벌이지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것이 친밀감을 표현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일종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좋은 게 있으면 돌려 봐야지"로 대표되는, 야설과 성인잡지를 돌려보던 중·고생 때부터 이어오는 그 방식이 사회에서도 계속 된다.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인데, 경선으로 치러진 노동조합 선거에서 선거운동원이 조합원 유권자들에게 카톡으로 선거정책 내용과 함께 야동을 같이 보내는 일도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습관처럼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드니 매번 그러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걸 즐기는 친한 사람들끼리 날을 잡아서 음주 후 노래방으로 놀러 간다. 아니면 소위 접대의 성격을 갖는 자리가 이렇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는 노래방 가면 실컷 주무르다 온다", "노래방에 그 재미 아니면 뭐 때문에 가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보통 조합원들 몇몇이 언제 어디서 그랬다고 사후에 알게 되는데, 애써 노조와는 무관한 일로 선을 긋고 '개인들이 그러는데 별 수 있나' 하고 그냥 넘어간다. 돈이 없으니 내 주변에서 룸 같이 비싼 곳에 가는 경우를 본 적은 없지만, 임금이 높은 정규직들의 경우에는 사측이 작심하고 룸에서 노조간부들을 접대하며 노조활동을 갉아먹는 상황이 끊이지 않고 폭로돼 왔다.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행사와 일정에서 여성혐오적 발언과 욕설 등을 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인식은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도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전혀 그러지 않는 이중성을 대다수가 갖고 있다. 최소한 반성폭력 교육과 성평등 교양 등을 배치해야 하지만 그조차도 현안을 핑계로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혹은 우리 조합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회가 있을 때 가끔씩 지적하지만 간부로서 으레 하는 잔소리, 또는 소위 '범생이' 취급을 받고 마는 것이 사실이다.
나 같은 수준과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기본적으로 공동체 내의 꾸준한 캠페인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떠한 실천도 못하고 있다. 적합한 수준의 안내와 적절한 교육 방식이 절실하지만, 내 고민은 턱 없이 부족하고 의지도 박약하다. 부끄럽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핑계만 댈 뿐이다.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있는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① 조합원 의무교육에 반성폭력 강의 배치, ② 연1회 이상 성평등 교양 배치 ③ 조합간부 연1회 성평등 교육 필수 이수 ④ 조합 내부 수칙으로 여성혐오 추방 캠페인…. 아는 것도, 떠오르는 것도 이것밖에 없다. 물론 노동조합 조직 내에서 이런 일들을 추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당장 '책임질 수 있을까?' 자신 있게 장담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래도 하나하나 해보는 수밖에 더 있겠나. 우리 조합원들을 사로잡을 반성폭력 강사부터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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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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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보내는 게 미덕? 남성 중심 노조의 '맨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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