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2015년,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구호.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SNS에서 이 구호를 활용한 해시태그 운동이 일기도 했다.
김예지
아직도 궁금하다. 왜 나는, 나아가 운동을 하는 우리는 사회의 모든 차별에 저항하자는 여성주의를, 그리고 그러한 차별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여성주의를 공부하지 않았는지. 여성주의 책을 처음 읽고 내가 했던 이야기는, "운동권은 처음에 이걸 읽어야 해!"일 정도였음에도.
그렇게 살아왔다. 두 마디 대화를 통해 여성주의를 접했던 나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여성주의적으로' 말이다!)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우리에게는 이미 그런 여성주의적인 소양이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안의 성차별을 깨닫고 여성주의 공부 시작
노동조합에서 일을 시작하고,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처음으로 나의 성차별적 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여성(선배)을 대하는 태도와 남성(선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같은 피드백을 받아도 여성에게는 되지도 않는 꼬투리를 잡는 반면, 남성에게는 1초의 고민 없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우 호되게 혼이 나고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여성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맺어왔던 관계들을 여성주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연 운동을 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여성주의적으로 살았나. 혹여 공통의 지향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내부의 문제들을 깊이 있게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처음에는 의문을 던지며 시작했지만 경험과 기억을 돌아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운동사회의 '틀'운동을 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단체 일을 시작했던 나는 정말 외로웠다. 함께 일하는 단체 사람들은 나보다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났다. 적응을 잘하지 못해 혼자 끙끙대며 매일을 술로 보냈다. 당시의 나는 강박적으로 '힘듦'과 '외로움'을 숨기려 했다.
'동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들을 쉽게 토로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서웠다. 운동사회는 신기하게도(?) '강인하고', '지치지 않으며', '멘탈이 강한', 사람을 요구(또는 좋아)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약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쉽게 무엇인가 맡길 수 없는' 사람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