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 훈수 두고 싶다면 차라리 밥이라도 한 끼 사주시고 후식을 먹으면서 말씀해 주세요.
정효정
싱글들끼리의 세계도 각박하긴 마찬가지다. 한 선배는 거래처의 여자 과장 성격이 아주 깐깐하다며, "그녀가 왜 시집을 못 갔는지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본인도 40대 중반의 싱글 남성이지만, 그 말을 하는 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결혼을 안 한 남자동기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남자가 결혼을 늦게 하면 자기보다 나은 여자를 만나고, 여자가 결혼을 늦게 하면 자기보다 못한 남자를 만나는 거야." 그의 표정엔 우월감이 서려있었다.
심지어 지인과 말다툼을 하던 내 친구는 "저러니까 결혼을 못했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지인은 이혼한 여성이었다. 싱글이면 싱글끼리 위해주며 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미혼여성은 싱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였다.
이렇게 미혼여성을 둘러싼 채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지만, 정작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비혼'이라는 단어는 간단히 무시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미생(未生)... 이 아니라 '미혼(未婚), 아직 결혼하지 못한 자'... 그중에서도 '미혼여성'의 삶이다.
설상가상 미혼여성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잣대가 있다. 바로 연애다. 한 지인은 술자리에서 "누나,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요. 여자가 나이 들어서 연애도 안 하면 궁상맞아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결혼도, 연애도 능력으로 치환되는 세계 속에서 그 두 가지가 없는 여성은 어떤 삶을 살든 간에, 그저 '궁상'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그때 나는 정말 연애를 원했을까?" 대답은 '원했다'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을 향한 100% 순수한 열망이었다고 확신할 순 없다. 그해, 나는 '궁상'이라는 단어에 상처 받았고, 그 단어가 주는 비참함에서 도망치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