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포장철거 반납된 장비들을 박스에 넣고 포장하는 작업을 2주동안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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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창고가 건물 7층에서 6층으로 이사를 하면서 하나 하나 정리를 해나간지 약 2주가 지났다. 그동안 꾸준히 정리를 해나간 결과 창고에 있는 모든 장비의 시리얼 번호와 장비 위치가 하나의 엑셀 파일로 정리되어 내 PC에 저장될 수 있었다. 이제 매월 마감 재고조사 당일 창고의 모든 장비를 일일히 꺼내서 시리얼 번호를 스캐닝 하지 않아도 된다.
제조사에서 납품되는 신규 단말기는 1개 큰 박스안에 개별 포장된 5대의 장비가 들어있었다. 바깥에 포장된 큰 박스에는 안에든 장비들의 시리얼 번호가 바코드로 모두 붙어 있었고 5개씩 포장된 박스의 고유번호도 바코드로 정리가 되어 함께 붙어 있었다. 장비가 납품될 때면 실물과 함께 고유번호와 시리얼 번호가 정리된 엑셀 파일이 함께 e-메일로 도착했다.
그 엑셀 파일만 가지고 있으면 창고에 있는 단말기 재고수량은 물론이고 가지고 있는 장비의 모든 시리얼 번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협력업체에 장비를 출고 시킬 때에도 내보낸 박스의 고유번호만 알면 어떤 시리얼 번호를 가진 장비가 출고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신품 장비는 그렇게 제조사에서 보내주는 데이터만 있으면 손쉽게 관리를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가입자가 해지하고 반납해온 중고 장비들이었다. 해지가 돼 철거된 장비들은 포장된 박스도 없었고 제조사에서처럼 관리하기 쉽도록 정리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철거 반납된 장비가 창고 구석에서부터 쌓이기 시작했던 것이 수백여대에 이르렀고 그렇게 정리되지 못한 장비들을 나에게 물려준채 내 선임은 서울 본사로 떠나버렸다.
창고를 이사하면서 철거 반납된 장비들을 박스에 담아 포장하기 시작했다. 소포장은 하지 않고 큰 박스안에 10여 대의 장비를 넣고 테이프로 봉인했다. 박스에 포장하기전 박스에 들어갈 장비들의 시리얼 번호를 스캐너로 찍어 엑셀에 기록한 뒤, 봉인한 박스에 임의로 정한 고유번호를 매기고 엑셀 파일에도 장비 시리얼 번호 옆에 박스 고유번호를 함께 기록했다.
일주일간의 정리, 결과는?
그렇게 약 일주일간 철거 반납된 장비들의 정리를 끝냈다. 그렇게 새로 만든 엑셀 파일 하나만 있으면 창고 어디에 어떤 장비가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매번 철거 장비를 재사용 하기 위해 협력업체에 출고 시킬려면 보내야하는 장비들의 시리얼 번호를 일일이 확인했어야 하는데 이젠 박스의 고유번호만 확인하고 내보내면 됐다. 그 덕에 협력업체에서도 장비를 수령하기 위해 우리 회사에 들어와 대기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나의 하루 일과 중에 상당 시간을 차지 했던 창고 정리 작업이 사라지면서 업무 시간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린일을 쳐내기 바쁘던 그 전과 달리 업무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좀 더 챙겨야 할 일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부 정리'를 먼저 했으니 이제는 '외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협력업체 창고도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사에서 상품 서비스에 필요한 장비는 모두 가입자에게 '임대'형식으로 서비스 기간동안 제공된다. 가입자에게 상품의 설치와 철거를 담당하는 곳은 협력업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비를 나보다 더 잘 관리해야 하는 곳은 협력업체였다. 협력업체에서 장비를 잘 취급하고 관리한다면 철거 되는 장비의 재사용율이 더 높아질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기존에 챙기지 않던 일을 챙기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많은 '잡음'이 생겨났다. 우리보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협력업체에서는 장비 관리 인력이 부족했고 우리 회사에서 내가 입사 초반에 겪었던 것처럼 하루 하루 창고 정리 하는 일만해도 시간이 모자라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업체에 당장 창고 관리 표준을 만들고 시행 요청을 해봤자 실제로 시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가장 큰 문제는 협력업체 대표자들의 인식이었다. 현장에서 설치나 철거 업무를 하게 되면 공수당 비용이 정산되어져 협력업체 매출이 되지만 장비관리 업무는 협력업체 입장에서 돈을 벌어 들이는 업무가 아닌 돈 까먹는 지출 부서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협력업체 장비관리 담당자들은 회사에서 가장 어리고 값싼 인력들로 구성돼 있었다. 소위 '짬'이 안 되는 사원들이다보니 현장에서 설치나 철거를 담당하는 기사들에게 치여서 장비 관리 업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신을 가지고 내린 '결단'과 '실행'... 변화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