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와 세월호의 진실을 묻어두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 김지철 충남교육감.
이아림
1987년 충남교사협의회장을 맡으면서 해직 교사가 된 그는 천안민주단체협의회 의장,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창립준비위원장,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준비위원, 천안학교급식협의회 상임대표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충남교육청 교육위원과 충남도의회 교육의원을 연임한 뒤에 2014년 충남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충남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습니다.
지난 8월 7일 천안에서 김지철(64) 교육감을 만났습니다. 7월 9일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 발족식에서 만난 데 이어 두 번째입니다. 그에게 임종국 선생과의 인연과 교육계의 친일청산 그리고, 교육감으로서 충남교육 혁신 등의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 왜 뺨을 맞는 문제 학생이 됐나요. "서울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가정형편 때문에 못 갔습니다. 열아홉에 할아버지를 잃으면서 소년가장이 된 아버님이 초등학교 교사 박봉으로 할머니와 6형제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와 저까지 10식구를 책임져야했습니다. 그 많은 식구들이 시골에서 두 칸 방에 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세 칸짜리 방으로 이사했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서울 진학이 좌절되면서 공부에 대한 의욕이 꺾였고 이로 인해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러다 1968년 고2 때 '흥사단 천안도산연구회'에 가입했습니다. 이 모임에는 천안고, 천안여고, 천안공고, 복자여고 등 각 학교의 우등생들이 참여했는데 따라가려면 정신을 차려야했습니다. 매주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5분 스피치 훈련을 하다 보니 의식이 빠르게 변화됐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을 배우면서 역사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남들은 대학에서 의식을 깨웠는데 저는 고등학생 때 의식화가 됐습니다. 역사 문제에 있어선 조숙했던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