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탈레로 호세가 치료해준 발 스티로폼으로 상처가 심한 부분에 부담이 가지 않게 처지해주었다
정효정
다음날 길을 떠나기 전, 나는 호세의 앞에서 멀쩡해졌다는 의미로 힘차게 제자리 걸음을 걸어보였다. 그는 잠시 웃은 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축성을 해주었다.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좋은 순례자"라는 단어만 알아들었다. 어떤 순례자가 좋은 순례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발을 구원해 준 그를 위해서라도 꼭 그리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덕을 올라가자 방금 떠나온 마을의 바위산이 한눈에 보인다. 저 바위산에는 12세기에 지어진 성모마리아의 동굴성당이 있다. 보통은 잠겨있고 열쇠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매일 오후 5시 순례자들을 위한 성당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성당 내부에는 1년에 한 번 축제에만 외출을 한다는 성모마리아가 있고, 성당 벽에는 꽃과 구름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었다. 그 아득한 시간과 열정 앞에서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보았던 동양의 석굴사원들이 생각났다. 동쪽의 사람들이 석굴을 파고 불상을 만들 때, 서쪽의 사람들은 교회에 파고 기도를 올렸다. 진리를 위한 열정은 동서를 가로질러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도 그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