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라의 공립 알베르게 100여명이 한 공간에서 잔다
정효정
배낭여행을 많이 해본 편이라 이렇게 남녀가 섞인 도미토리(다인실) 문화에 익숙해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순례자들에겐 문화쇼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한 20대 여성 순례자는 샤워부스에 들어가기 전에 옷을 거의 벗고 들어가는 스페인 순례자 때문에 깜짝 놀라서 하소연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가서 옷을 벗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이미 밖에서부터 최소한의 옷이나 수건만 걸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공동생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불편은 감수해야했지만, 순례길의 알베르게는 대부분 좋은 기억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하루 종일 걸은 후 도착한 이 곳에선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고, 또 낮 동안 길 위에서 스쳤던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복작거리며 생활했지만, 그래도 다들 필요한 예의를 지키는 것도 좋았다. 서로가 당연하다는 듯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이 길의 좋은 점이다. 단,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그 남자의 코골이처럼.
그가 물었다 "너도 하루 더 묵지 않을래?"칫솔을 물고 세면실로 가는데 다니엘과 마주쳤다. 그는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테바 샌들이었는데, 이스라엘에 같은 이름의 회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돌아가야 해서 곧 순례를 마칠 예정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와서 걸으면 되니까."유럽이나 그 근처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걷는 만큼 걷다가 다음에 다시 와서 걷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 순례자들은 보통 산티아고까지 완주가 기본이다. 한번은 이런 차이를 두고 한 순례자가 '경험을 더 소중히 생각하느냐, 성취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른 나라별 가치관 차이 아니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르다고 말해줬다. 물론 그런 가치관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기 나라에서 스페인까지 오는 항공료 아닐까. 항공료만 저렴하면 나도 휴가 때마다 와서 걷다 가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다니엘은 에스텔라에서 하루 더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이틀을 더 걸어 로그로뇨로 간 후, 순례를 마무리 지을 거라고 했다. 이제 겨우 얼굴을 익혔는데 벌써 이별이구나 싶어서 서운했다. 그때 다니엘이 내게 물었다.
"너도 에스텔라에서 하루 더 묵지 않을래? 이 동네 멋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