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조직이 통폐합되면서 각 부서간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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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조직 개편으로 인해 지역별 개별 방송국 체제에서 비슷한 지역의 방송국 2~3개를 묶어 '본부' 단위 운영 체제로 바뀌었다. 내가 소속돼 있던 김해 지역은 경상남도 관할 구역 내에 있던 창원·마산지역 방송국과 1개 본부로 통합됐다. 그중 지자체 제일 상위 기관인 도청에 가까이 있는 방송국이 중심지가 됐고, 우리는 순식간에 '굴러온 돌' 취급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전국 곳곳에 지역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 내가 소속된 김해 지역 방송국은 그중에서도 맨파워가 좋고 실적 좋은 방송국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도 우리 지역 방송국이 다른 지역의 '표준'이 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지역 케이블 방송 사업에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각 지역에 있는 케이블 방송국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수 시기에 따라 해당 방송국 근무자들의 처우가 크게 차이나기도 했다. 대기업이 인수하기 이전부터 쭉 이 업계에 몸 담아온 사람들은 인수 당시 운 좋게 대우를 잘 받기도 했고 다른 동료들보다 못받기도 했다.
나는 이미 대기업이 인수한 이후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 여파는 내가 입사할 때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 지역 방송국은 창원에 있는 방송국보다 대기업에 늦게 인수가 됐다. 그 덕에 인수 조건 협상에 요령이 생긴 대기업에서는 창원 직원들과 비슷한 경력을 사진 사람들에게 인수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연봉과 직급을 깎아 버렸다. 그 이후 입사하는 신입 사원들은 기존 사원들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더욱 처우가 좋지 못했다. 소위말해 '꼬인 군번'인 것이다.
김해 지역 근무자들은 창원 지역 근무자들보다 불리한 조건에 계약을 체결하게 됐지만, 서로 얼굴 볼 일 없이 개별 방송국별로 별도 운영했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조직의 통폐합으로 인해 평소 수평관계로 지내던 사람들과 순식간에 수직관계가 되기 시작했고 상대적 빈곤으로 허탈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김해 지역에서 나와 함께 구매·자재 업무를 담당하는 팀원은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까다로운 팀장 탓에 우리는 항상 바쁘고 힘들었다. 가끔 팀장이 창원 방송국 팀장과 미팅이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우리를 불러 모아놓고 '창원에는 이리저리 하던데 너네는 어떻게 하고 있냐'라면서 경쟁을 부추겼다.
가까운 지역의 팀장들간에 신경전이 있었고 서로의 팀이 잘하고 있다고 자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밑에 있는 팀원들도 서로간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 미팅을 가지다 보니 우리보다 훨씬 높은 직급의 담당자들이 구매·자재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프로세스가 확립되지 못한 창원 지역의 상황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내집 살림'이 아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조직 통폐합 이후 김해와 창원이 한 본부장 소속이 되고 난 뒤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팀장들은 본부장에게 자기가 맡고 있는 팀의 업무가 더 잘 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어필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우리의 경쟁 구도는 나날이 심해져갔다. 그 경쟁 구도는 결국 우리에게 화살이 돼 돌아왔고,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해치우던 우리 김해 방송국 사람들은 직급이 더 낮은 사람들임에도 큰소리 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직급'보다 '실력'이 인정 받는다고 생각할 때 쯤 조직은 또 한번 통폐합 되었고 같은 업무를 담당하던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줄어든 인력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다 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들을 우선으로 해야 했고, 그로 인해 각 담당자간 역량 차이에 대한 변별력도 점점 사라져갔다.
결국 실력으로 큰 소리치던 우리는 직급에 밀려났고 수시로 바뀌는 부서장과 본부장들은 우리의 히스토리나 역량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앞에서 기분 좋은 소리 하는 사람들만 싸고 돌았다. 몇 년이 지나 창원과 김해가 통합돼 살아남은 사람들은 김해 사람들이 많았지만 맨파워 좋기로 소문난 김해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정치'에 눈 먼 사람들만 가득했다. 나중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실력'으로 인정 받던 시절은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