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과 바다, 그리고 해안선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우봉.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이영섭
그랬다. 그날 모임은 회사원으로서 적합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자리였고, 거기서 나는 열정도 없고, 노~~오~~력도 해본 적 없는, 심지어 영화 취향마저 괴상한 이상한 놈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면접과 승진심사를 위한 특강이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문제는 그 대답이 정말로 내 진심이었다는데 있다. 혹시 그 다음으로는 어떨 때 행복하냐고 물었다면 "온라인 게임에서 득템했을 때"라든지, "응원하는 야구팀이 9회말에 역전했을 때"라고 답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내 성격과 적성, 취향은 어떠한지, 무슨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세월이 한창 지나 작게나마 연륜이 쌓인 지금 눈으로 그때 나를 보면 이 녀석은 승진과 보너스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회사라는 시스템에 잘 맞지 않는 부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일을 그만두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이대로라면 너는 분명 후회하게 될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제주로 내려오고 싶다는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자주 접한다. 하지만 이런 분들에게 그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 과연 이 사람이 도시에서의 성공지향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삶과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것들을 반쯤 내려놓아야 하는 제주에서의 삶과 어울리는 사람인지지 본인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람마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성공을 쟁취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에 대한 대가로 멋진 옷과 차, 집을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잠시 지쳤다고 해서 귀촌을 생각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반대로 직장생활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 내 몸에 잘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한 번쯤 그곳을 벗어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배워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선택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