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프리 데리 구역에 그려져 있는 벽화
(아래) BBC 히스토리 방송에서 제공한 1972년 실제 사진.
김현지, BBC
데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는 바로 프리 데리 구역이다. 이곳은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 감독의 영화, <블러디 선데이>로 더 유명해진 곳으로 실제 영국군인과 아일랜드 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던 곳이다.
1916년 부활절 봉기 이후 남쪽 아일랜드는 독립을 하였고, 북아일랜드 일부 지역은 영국 자치령에 속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북아일랜드는 노골적으로 개신교와 천주교를 차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북아일랜드 안에서 천주교 신자가 높았던 데리는 소외된 도시가 되었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제 상황도 급격히 나빠졌다. 1960년부터 북아일랜드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IRA(The Irish Republican Army)가 결성되었고 프리 데리 구역도 이 무렵 생겨났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구교도 차별을 반대하는 평화 시위단에게 영국군은 총을 쏘았고,그 결과 14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13명이 부상을 당한다. 한국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했다. 그때 죽거나 다쳤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10대나 20대였다고 한다.
영국에서 한동안 이 사건은 아일랜드 시위단이 먼저 공격한 것을 영국 군대가 정당방위한 것이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2010년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이 사건이 비무장 시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임을 인정하였고 공식적인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
1998년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북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굿 프라이데이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을 맺었고 IRA도 2005년에 완전 무장 해제하였다.
현재 런던데리는 특별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도시이다. 하지만 런던데리의 다른 지역에는 영국 국기와 북아일랜드 국기가 함께 걸려있는데 반해, 프리 데리 구역에는 아일랜드 국기가 걸려 있다. 곳곳의 벽에 그려진 벽화를 통해 그 당시 슬펐던 역사를 기억하게 되는 곳이다.
한국의 경우 약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었다. 그나마 우리는 식민지배의 역사가 짧았고 여전히 그때의 생존자들이 살아 있다. 국민의 공통된 정서 속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은 있지만 개인이 느끼는 정서 속의 일본은 조금 다르다. 방사능 문제 이전에는 여행하기 좋은 나라, 깨끗한 나라, 친절한 사람들, 좋은 제품들 등 일본 자체에 대한 개인이 느끼는 이미지는 그리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