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길
이상옥
마지막 길마저 품격 있게 조성한 마인드
아, 통영 -이상옥의 디카시 <박경리 묘소 초입>오랜만에 통영을 찾았다. 지난 6월 23일 정주공업대학교 종강을 하고 한국으로 와서는 다음 날 고성문화원 통영 투어에 합류했다. 통영은 고성과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 통영은 고성반도 끝자락으로 고성군에 속해 있었다. 원래 고성에 비해서 통영은 척박한 땅이었다.
고성문화원에서 통영 투어 왔다니까, 통영문화 해설사가 큰집 동네서 왔으니, 잘 안내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인근 고성이 고향인 나는 내심 통영의 문화마인드에 대해 늘 부러움을 갖고 있던 터에 어,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천혜의 풍광을 지닌 예향 통영을 찾는 감격으로 가슴이 설랬다. 바다가 마치 강처럼 흐르고, 바다가 시내로 쑥쑥 들어와 친근한 이웃 같이 느껴지는 이곳이 어찌 한국의 나폴리겠는가. 이탈리아에서 나폴리를 말할 때 '이태리의 통영'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예향 통영을 오랜만에 찾는 감격 동 시대에 예술가가 이렇게 많이 배출되는 곳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구문명을 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과 지리상으로 가까이 있는 통영은 일찍부터 근대 서구문명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영에는 지식인이나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