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가격의 가게를 만나기도 한다.
이영섭
제주 이주민들이 장을 보는 방법
의견이 분분한 것은 외식보다는 집에서 해먹는 일반적인 식재료와 관련된 부분이다. 일단 제주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분들, 특히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며 지역 내 네트워크가 형성된 분들은 먹을 것을 어느 정도 자급자족할 수 있기에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굶어 죽진 않는 곳이 제주'라고 입을 모은다.
육지에서 이주해온 분들 중 농업이나 어업·축산업과 관련된 일을 했다거나, 하다 못해 시골장에 익숙해 농수산물에 대한 정보와 시세에 통달한 분들의 경우에도 오일장의 저렴한 물가 덕에 생활비가 많이 줄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 의견을 내는 그룹은 위의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이주민들이다. 즉, 도시에서나 제주에서나 대형마트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서울과 제주를 왔다갔다하며 생활해본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제주가 산지인 식재료는 당연히 제주도 마트가 싸다. 육지와 중국이 산지인 식재료는 육지 마트가 싸다. 즉, 같은 브랜드의 대형마트라 해도 각각의 품목에 따라 육지에 비해 싸기도, 비싸기도 하기에 이렇게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한 것이다.
우리가 처음에 생각한 방안은 오일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농수산물의 경우에는 대형마트보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이 훨씬 신선하고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평생 시장을 떡볶이 먹으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해온 우리에게 오일장은 너무나 높고 큰 벽이었다. 가격 흥정은 고사하고, 판매 상품에 가격표라는 것이 거의 붙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봐도 육지것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우리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던 것이다(물론 시장 상인분들 대부분이 양심적이고 좋은 분들이었지만 그중에는 분명 바가지 씌우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집을 구할 때도 그랬다. 가뜩이나 육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몫을 챙기려는 업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얼굴에 '순진무구'(라고 쓰고 '어리숙한'이라고 읽는다)라는 낙인이 찍힌 우리에게 정가가 정해지지 않은 매물에 대한 가격 협상은 '호갱'(호구+고객)이 되는 지름길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개적인 가격이 제시되는 신축 분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오일장에 대한 아픈 기억만 남긴 채 우리는 결국 제주에 와서도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용적인 측면은 차지하더라도 도시의 냄새가 가득해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그곳 말이다.
플리마켓에서 작은 희망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