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웃지만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는 '홍반장'이다. 법환동은 그래서 왠지 친숙하다.
이영섭
집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이번에는 집 다음으로 많이 궁금해하는 생활비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전 책들이나 방송을 보면 제주에 이주한 후 생활비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흔히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이것을 무조건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각각의 가정에 따라 생활비라 부를 수 있는 예산 개념이 많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생활비라 하면 의식주와 문화생활비, 교육비, 병원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이나 방송에서 소개된 '육지보다 훨씬 적은 생활비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들' 이야기는 육지에서 쓸데없이(?) 지출되던 문화생활비를 없애고, 입시를 위한 자녀 사교육비 등도 모두 없애고 이를 제주도의 자연에 대한 만족감으로 대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웃들에게 얻든, 혹은 직접 텃밭에 농사를 짓든 먹거리와 관련된 비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절감이 가능했을 때 얘기인 것이다.
만약 육지에서 살던 모습 그대로,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살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이를 학원 몇 곳에 보내고, 가끔은 시내에 나가 외식도 하고, 영화나 공연도 보고 산다면 과연 생활비는 줄어들까, 늘어날까?
제주도 물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답이 있다. 일단 대형마트에서 파는 공산품 가격은 대체로 비슷하고, 식재료의 경우 중국산이냐 국산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삼다수와 제주산 해산물·농축산물이 아니면 조금 비싸게 느껴진다.
택배로 배송되는 물건을 보면 쿠팡과 한샘 등이 최근 제주 무료배송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택배비에 추가요금이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식비의 경우에도 관광지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지방도시에 비하면 결코 싼 편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육지에서 살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제주의 자연이 주는 혜택까지 얻으려 했다면 생활비는 늘어날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제주에서 보다 적은 돈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지에서 당연시했던 혜택들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함을 느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나 다행인 것은 제주 이주를 결행한 분들이라면 이러한 대체 과정을 거치며 오히려 더 큰 만족도를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