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화백이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 종로구립미술관으로 재탄생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유영호
이런 생각 속에 조금만 걷다 보면 우측 골목길에 이곳 서촌의 또 다른 명소가 위치해 있다. 소위 '박노수 가옥'이라 불리는 '종로구립미술관'이다.
이 곳은 한동안 '서촌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했던 곳이다.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로 한국화의 거장 박노수 화백(1927~2013)의 집이었다. 1938년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로 박노수 화백이 1972년 구입하여 살아 온 곳이다. 그러다 2011년 종로구에 기증하면서 최근 구립미술관으로 재탄생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 곳이다.
본래 이 집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였던 순정효황후의 백부 윤덕영이 시집간 딸을 위해 지어준 집이다. 윤덕영의 집인 벽수산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이니 쉽게 말해 자기 집 바로 아래 집인 셈이다.
윤덕영은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지금의 청와대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시종원경이란 고위관료였다. 그는 조선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그 순간 침략자 일본을 대변하며 합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의 조카딸이자 황후였던 순정효황후는 자신의 치마 속에 옥새를 감춰두었으나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황후를 협박하여 옥새를 탈취한 장본이기도 하다. 이것이 518년 조선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한 1910년 8월 22일 마지막 어전회의의 모습이다.
이런 매국노 윤덕영이 합방 뒤 총독부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딸을 위해 지어준 집이다.
한편 이 집은 당시 화신백화점과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한국근대건축의 개척자 박길룡이 1937년 절충식 기법으로 지은 가정집이다. 한옥 건축기술에 중국인 기술자들이 참여, 한식과 서양식 절충 건축으로 탄생했는데 전반적으로 프랑스풍을 취하고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1층 위에 서까래가 보이는 지붕을 얹은 2층 구조가 이채롭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돼 있으며 벽난로가 3개 설치돼 있다.
벌써 약 80년 가까이 지난 오래된 집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사대문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집이 있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은 놀라게 한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이 집이 지어진 1938년이면 그 전해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조선백성들은 일제의 대륙침략을 위한 총알받이로, 일본군의 노리개인 '위안부'로 끌려가며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있던 시기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비록 이런 슬픈 역사를 갖고 있는 건물이지만 세월이 흘러 박노수 화백의 집이 되었고 이제는 이곳이 시민들에게 돌려져 박노수의 그림 등 여러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편 박노수는 해방 후 한국화 1세대 작가로서 앞서 들른 청전 이상범의 제자이기도 하다.
조선 위항문학의 정점 '송석원 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