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처럼 노거수 소나무가 지키고 서있는 초지진 돈대.
김종성
해안 산책로, 콘크리트 제방길을 달리다 푹신푹신한 논길을 만났다. 젊었을 땐 배를 탔던 어민이었다는 할아버지 한 분이 가을에 향긋한 파가 될 까만 씨앗을 텃밭에 뿌리고 있었다. 강화나들길이 밭 옆에 나있어 불편하진 않느냐고 여쭤봤더니,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나 같은 여행자가 오면 반갑단다. 길에 대한 명언에 한 줄 추가해야겠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한적하면 더 좋다.'
호국돈대길에서 만난 10개 돈대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형태다. 돈대가 자리한 지형에 맞춰 네모형, 둥근형, 타원형, ㄷ자형 등 여러 가지 생김새다. 돈대에 들를 적마다 이 돈대는 어떤 모양일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궁금하고 흥미롭다.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한 돈대는 우뚝한 성채 같고, 바닷가 언덕 나무들 사이에 들어선 돈대는 숲속의 안락한 요새처럼 보이고, 냉이꽃·민들레가 피어나는 편편한 평지에 있는 돈대는 포근한 마당 같았다.
마치 수호신처럼 위풍당당한 소나무들을 곁에 둔 돈대도 있었다. 1679년 조선 숙종 때 쌓은 초지진의 초지돈대(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다. 일본 군함 운요호와 벌인 포격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전함2척과 수송선, 군사를 보내 협상을 강요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하는 수 없이 협상에 응했고, 불평등한 '강화수호조약(1876년)'이 체결된다.
불과 22년 전인 1854년 미국의 무력에 문호를 개방한 후 서양을 따라 군사력을 키운 일본. 미국과 같은 방법인 대포와 함대를 동원하는 포함외교(砲艦外交)로 조선을 굴복시킨 것이다. 세상은 이미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데 과거에 머물러 기득권에 연연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소홀했던 조선은 결국 식민지가 되어 국권을 빼앗기고 만다.
초지돈대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당시 전투현장을 목격했을 노거수 소나무와 성벽에 아직도 포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나들길, 공원이 생기고 강화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호국돈대길은 지날수록 숙연해지는 길이다.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인 여느 강화나들길과 무언가 달랐다. 강화 돈대는 이제 세계문화유산이 되려는 중이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강화풍물시장 - 갑곶돈대, 강화전쟁박물관 - 광성보, 용두돈대 - 덕진진 - 초지진 (왕복 약 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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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못지않은 '강화나들길', 매력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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