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앞 현수막모두 투표를 하자
이희동
사실 위와 같은 이야기는 평소에도 어머니께 계속 들어왔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들르면 종종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셨는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당신이 자신의 준거집단 속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그 지향점이 달라 의가 상한다던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너와 달라.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그런다. 내가 아들인 너한테 '세뇌교육' 받아서 그렇다고. 그래서 이제는 일부러라도 정치 이야기를 잘 안 해. 사람들도 정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고. 요새는 그래서 이모하고도 사이가 서먹서먹하다니까. 이모가 카카오톡으로 그런 정치 관련 정보를 보내면 이젠 쳐다보지도 않아."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달랐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니, 어머니께서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남들의 설득에 자신이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을 설득시켜 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머니이시니 어찌 당신의 남편을 설득하고 싶지 않겠는가. 어머니는 남편이 더 이상 맹목적으로 투표하지 않으시길 바랐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정치적 견해를 가지셨으면 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방법부디 남편이 종편에서 보고 들은 대로 판단하지 않길 바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의 계급에 맞게 아버지 바로 자신에게 좀더 유리한 방향으로 투표하길 바라는 아들.
그러나 70대 아버지를 설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 전 아버지와 같이 살 때에는 밥상머리나 목욕탕 등에서 뉴스를 보며 틈틈이 아버지께 내가 아는 바를 전달해 드렸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을 제공해 드리며 당신의 판단을 도와드렸다. 하지만, 결혼 후 물리적으로 멀어진 지금 아버지께 내 정치적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내가 일상을 공유하지 않은 탓이었다.
게다가 설득이 더욱 어려운 것은 아버지가 현재 세상과 접촉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나야 TV와 신문 등 전통적인 매체 외에도 팟캐스트나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조선일보>와 <TV조선>을 통해 정보를 얻고 세상을 해석하고 있었다. 왜 그 많은 채널 중에 하필 <TV조선>을 보냐는 나의 질문에 <TV조선>이 가장 재미있으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시는 아버지. 확실히 노년층을 타깃으로 하는 종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내 자신을 들먹이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세상을 '조선일보'식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계신다 하더라도, 50년대 전쟁을 경험하고 살벌한 삶의 경쟁 방식이 익숙한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가족, 특히 자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세대들에게 가장 큰 전제는 나의 자식들이 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