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는 술 마시고 춤추는 야유회 분위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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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 "덕아~ 혹시 나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니?"
덕 : "무슨 말이야?"
고모 : "예를 들어 책임감이라거나 뭐~~ '겸손하다'거나 이런 말? 쑥쓰럽지만~."
덕 : "(한참을 생각하더니)기회."
고모 : "기회? 음…. 어떤 점에서?"
덕 : "할머니나 큰고모가 그러셨어. 고모는 어려운 상황도 기회로 여기더니 잘 되는 것 같다고."
고모 : "그런 말씀들을 하셨어? 난 몰랐는데. 덕아~ 고모가 처음부터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여겼었을까, 아니면 살다 보니 그것이 해답이기에 그쪽을 선택했을까."
내가 진지하게 말하니 덕이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고모 : "할머니나 큰 고모 말씀이 맞아. 사실은 고모가 그만큼 아팠었기에 살아보려고 시작한 선택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선택한 것 같고…. 그리고 너도 불편한 상황이라도 그렇게 여기면 어떨까 싶은데…. 어떠니?"
덕 : "나도 알아.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
고모 : "너도 알아?"
덕 : "알긴 아는데…. 쉽지 않아."
고모 : "고모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었지. 여러 번 반복하고, 시간이 걸리고, 어려워 보이는 상황을 기회로 여기면서 정말 기회였다는 것을 경험해야 했어. 그러다 보니 어느날부터 자동으로 기회라고 여기게 되는 것 같아. 우리가 본 봄에 핀 꽃들처럼."
덕이는 입술에 힘을 준 채 듣고 있다. 나는 덕이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여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물었다.
고모 : "혹시 다음주 토요일 야유회에서 덕이가 기회로 여길 만한 일이 있을까?"
덕 : "있어, 아줌마들 심부름이나 물건 들어드리는 것 그리고~ 술도 따라 드리고…."
고모 : "그렇구나~. 만약 내가 그 중에 한 아주머니라면 덕이가 내 가방을 들어주거나 술도 따라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덕 : "할머니한테도 잘 안 하는데…."
고모 : "혹시 이거 아니? 나도 할머니께 해드리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경우가 있거든.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 어쩌면 할머니께서 당신 딸이 다른 사람과 친하게 잘 지낸
다면 틀림없이 좋아하실거라는 거지. 이런 내 생각에 너도 한 표?"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쉽게 야유회를 간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일할 때와는 달리 관광버스를 타고, 가서는 술 마시고, 아주머니들의 즐거움인 관광춤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고모 : "한편으로 덕아~. 지금 너에게는 그 장면이 익숙하지 않아서 빠지고 싶겠지만 한 3년쯤되면 어울리게 될걸, 저번에 회식 후 너가 춤출 때처럼~."
덕 : "그 얘긴 하지마!(부끄러워 한다)"
회식 후 내게 전화가 왔었다. 춤추는 곳이라며 데리러 오라고. 그래서 가봤더니 직원분들과 함께 기분 좋게 술을 마신 후에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는 귀여웠었는데 덕이는 더 이상 그때 이야기를 듣는 걸 원치 않는다. 더 이상은 말하지 말아야지….
덕 : "그리고 토요일 오후엔 특히 봉사해야 하는데~."
고모 : "누구와 봉사 함께할 약속했니?"
덕 : "아직은 아니~."
고모 : "그러면 야유회 때 직원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은 어떠니?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하는데…. "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남산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덕이가 진달래꽃, 개나리꽃에 가까이 가서 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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